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미국 백악관 공식 엑스(X)계정 갈무리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수입 의약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긴급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의약품 등을 포함한 수입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방침을 재확인했다. 트럼프는 “관세는 최소 25%이며, 향후 1년 동안 더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내 공장을 세우면 관세 부담이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 내 제조업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제약 제품에 대한 이러한 관세가 부과될지 여부와 시기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생산자들이 미국에서 생산 능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싶다고 밝히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약간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약품을 수입하는 국가이자 두 번째로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데이터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미국은 의약품 수입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으며, 미국 처방약에 사용되는 활성 의약품 성분의 약 80%가 주로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가 지난 1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의 의약품 수출액은 943억 달러, 수입액은 2126억 달러로 118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대비 305억 달러 증가한 수치다.
나라별로 살펴보면 EU는 미국의 의약품 무역수지 흑자국으로, 2023년 450억 유로의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최대 의약품 수입국이며, 2024년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16억5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인도는 미국의 주요 공급국이지만 120억9000만 달러의 적자를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의약품 수입 증가와 주요 무역국 간의 수출입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미국은 1994년 체결된 WTO 의약품 협정에 따라 의약품 및 의약품 생산에 사용되는 물질에 대한 관세를 철폐했다. 이 협정에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일본, 캐나다, 마카오, 노르웨이, 스위스, 영국 등 주요 의약품 선진국이 참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화학의약품 분야에서 중국과 인도로부터 저렴한 원료의약품을 수입한 뒤 이를 고가의 완제의약품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이에 따라, 화학 원료의약품을 수입하거나 단가가 중요한 복제의약품을 판매하는 미국 기업들은 중국산 의약품에 대한 관세 인상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바이오의약품 비중이 높은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들은 중국보다는 유럽발 관세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고가의 바이오의약품은 자체 생산하거나 유럽 등에서 제조해 판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럽산 의약품에 대한 관세가 부과될 경우 빅파마의 우려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우리나라 역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의약품이 필수품으로 분류되어 현재 미국 수출 시 면세 혜택을 받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대미 의약품 수출 규모는 약 39억8000만 달러(약 5조7264억 원)이며, 이 중 바이오의약품이 94.2%를 차지한다. 만약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제약사들의 비용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국내 기업들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마련 중이다.
셀트리온은 지난 19일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한 ‘주주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과 관련해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보호무역 리스크 대책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미국 관세 부과를 대비해 세 가지 전략을 발표했다. 우선 올해 미국에서 판매될 제품 약 9개월분(1월 말 기준)을 이미 현지로 옮겨 관세 부과 이전 수출분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또 미국 내 위탁생산(CMO) 업체를 통한 완제의약품 생산을 늘리고 추가 생산 가능 물량도 확보했다. 올해 상반기 내로 미국 내 생산시설 추가 확보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사측은 완제의약품보다 상대적으로 관세율이 낮은 원료의약품 수출을 늘려 부담을 완화할 방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공식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대책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의약품 관세 적용 시 미국 내 피해가 예상되며, 행정명령 방식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FTA 개정안을 만들기까지 과정이 270일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단기간 내 관세를 빨리 적용하기 위해 행정명령 채널로 적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수입업자가 가격을 부담할 수 있는 마진율이 다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미국 국민들의 피해가 즉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 오히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에 이미 미국 내에서도 병원이나 다국적 제약사들의 반발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관계자는 또 “주력 수출 품목 중 현지 영업 네트워크를 확보한 기업의 경우 미국 내 수입업자의 입장에서 가격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수요조사 후 일괄 관세가 아닌 특정 분야를 타깃으로 하는 관세정책이 나올 승산이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정부와 업계는 미국과 협상을 통해 관세 적용 예외 조치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수출 다변화와 미국 현지 생산 확대 등 대응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아직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이)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기업별로 실태 조사를 통해 예상되는 피해 규모 및 사례 등을 수집 중이다. 향후 정부 발표 뒤 그간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8일 트럼프 2기 대응 등을 위한 '2025년 중소·벤처기업 수출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전국 15개 수출지원센터에 애로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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