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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탄소 줄이는 선박이 돈 번다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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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제해사기구(IMO)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국제해사기구(IMO)가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탄소세 규제를 공식 도입하며, 글로벌 해운업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4월 7~1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83) 회의에서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 규제안’이 포함된 ‘넷제로 프레임워크(Net-Zero Framework)’가 최종 승인되면서, 해운업은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탄소 규제의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번 규제의 핵심은 선박이 사용하는 연료의 온실가스 연료 집약도(GFI, Greenhouse gas Fuel Intensity)를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금전적 조치를 취하는 시스템이다. 2027년부터는 기존 ‘탱크-투-웨이크(Tank-to-Wake)’ 방식 대신, 연료 채굴부터 연소까지를 아우르는 ‘웰-투-웨이크(Well-to-Wake)’ 기준으로 배출량을 측정한다.

감축 기준을 초과한 선박은 ‘보완단위(Remedial Unit)’를 구매해 탄소세를 납부해야 하며, 기준 이하로 감축한 선박은 ‘초과단위(Surplus Unit)’를 발행받아 이를 거래할 수 있다. 실질적 탄소세는 2028년 하반기부터 적용되며, 기준치 초과 정도에 따라 최대 톤당 380달러의 탄소세가 부과될 수 있다.

주요 타격 선종으로는 대규모 신조 발주와 친환경 비중이 낮은 피더(Feeder) 컨테이너선, MR 탱커, 구형 LNGC, 벌크선, PCC 등이 꼽히며, 업계에서는 노후 선박의 조기 퇴출과 친환경 선박(메탄올·암모니아 추진선 등) 신조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SK증권은 지난 13일 발표한 보고서 ‘이번 IMO 환경규제는 진짜다!’를 통해 “이번 규제가 25~30년 주기의 선박 교체 사이클을 앞당길 진짜 모멘텀”이라며 한국 조선사의 수혜를 전망했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IMO의 환경규제가 과거 하락사이클 막바지에 상승 모멘텀 재료로 쓰였다가 빠르게 사라지며 실망감을 안겨줬던 것과 달리 이번 중기조치인 탄소세는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규제로서 글로벌 선박 교체사이클을 견인할 ‘진짜’ 모멘텀”이라며 “이번 규제를 통해 글로벌 선박 친환경 교체 수요는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 조선사뿐만 아니라 조선 기자재, AM사업까지 대부분의 서플라이 체인이 수혜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탄소세 도입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은 국제해사기구에서 진행되는 협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에 불참을 선언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탄소세 도입 시 관세 보복'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미 국무부는 협상 참여국에 서한을 보내 탄소세 반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이터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미국 선적 선박은 전체의 1% 미만”이라며 협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을 제외한 175개국이 협상에 참여 중이며, 일부 세부 규칙은 다수결로 결정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규제로 해운 부문에 대한 첫 제도적 틀은 마련됐지만, 실질적인 감축 효과는 미지수다. 유럽 싱크탱크 T&E는 “현재 계획대로라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률은 고작 10%에 그칠 것”이라며, IMO가 제시한 20~30% 목표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기후 기후 싱크탱크인 기후솔루션 또한 “제도의 설계는 의미 있지만 실행력은 여전히 의문”이라며, 오는 10월 열릴 세부 규칙 조율 과정에서 탄소세 수준이나 예외 조항이 약화되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이번 규제 도입에 있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해운 부문 배출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해양수산부는 이미 2023년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60% 감축'이라는 자발적 목표를 선언하며 IMO 목표보다 최대 40%포인트(p) 더 높은 수치를 제시했다.

세계 1~2위 조선업 강국이자 7위 해운국인 한국은, 앞으로 메탄올·암모니아 추진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로 수혜가 기대되는 한편, 노후선 조기 퇴출 압박과 연료 전환 투자라는 과제도 안게 됐다.

기후솔루션은 “이번 합의는 수년에 걸친 논의와 복잡한 외교 협상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며 “이번 MEPC 83에서도 화석연료 경제 기반의 국가들이 기후위기 취약국이 주장하는 조치에 강력히 반대하는 등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는데, 이러한 난항을 거쳐 국제 해운 부문 온실가스 감축의 첫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비화석연료 선박이 다니는 ‘녹색해운항로’ 확대를 위한 지원을 더욱 강화해, 향후 국내 해운사들의 탄소세 부담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며 “아울러 비화석연료 선박 수요 증가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내 조선소에 대한 지원을 늘려, 조선업의 미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 역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는 ‘제10차 아워오션 콘퍼런스’ 주최국이자 ‘APEC 해양장관회의’ 의장국으로서 해운 탈탄소 전환을 선도할 책임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번 규제를 기회로 삼아 국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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