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출처=엔비디아 누리집
[이코리아] 미국 정부가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H20’ 칩에 대해 중국 수출을 전면 제한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15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미국 경제매체 CNBC 등 주요 외신은 미국 상무부가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H20 칩에 대해 중국 수출 시 사전 허가를 의무화한다고 보도했다. 이 조치는 무기한 적용될 예정이며, AMD의 MI308 등 이에 상응하는 고성능 AI 칩도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됐다.
해당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후 첫 대중 반도체 규제로,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다시금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결정은 중국이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해 보복 조치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단행됐다는 점에서 중국을 향한 강력한 경고로 풀이된다.
엔비디아의 H20 칩은 기존 H100 칩보다 성능을 낮춘 중국 전용 모델로, 미 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번 조치로 인해 수출이 전면 차단되면서, 엔비디아는 약 55억 달러(약 7조 5000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실제로 이날 시간외 거래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6% 이상 급락했다.
H20은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AI 모델 학습에 사용한 칩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 중국 대형 IT 기업들이 연말까지 해당 칩을 납품받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고 없는 수출 규제로 이들의 개발 일정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 정부의 규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 하원이 엔비디아의 아시아 지역 AI 칩 판매에 대한 조사를 착수한 사실이 알려지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특히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는 엔비디아가 규정을 위반해 중국 딥시크에 AI 칩을 고의로 공급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우리는 미국 내 고용과 인프라, 기술 리더십에 기여하고 있으며, 막대한 세수를 통해 국가 안보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수출 제한 조치의 여파는 한국 반도체 업계에도 즉각적으로 미쳤다. 지난 16일 국내 증시는 하락세로 출발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3.36%, -3.65% 급락하며 시장 지수를 끌어내렸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미중 무역갈등 재점화에 대한 우려가 확대됐다.
엔비디아의 2024년 중국 매출은 약 170억 달러(약 22조 원)로 전체 매출의 13%에 달한다.
H20에는 기존에 4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3 제품이 탑재됐다가, 최근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면서 SK하이닉스 등 일부 업체가 공급하는 5세대 'HBM3E 8단'이 탑재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아직 해당 공급망에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H20의 수출 제한 조치가 SK하이닉스 등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으로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HBM3 매출 비중이 낮고, 이미 지난 3월 H20용 HBM 공급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조치에 따른 직접적 피해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위해 준비 중이던 차세대 AI 칩 ‘B20’과 ‘H20E’ 역시 향후 수출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SK하이닉스 또한 장기적으로는 중국향 HBM 매출에서 부정적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영향이 단기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 전문 연구위원은 17일 <이코리아>와 통화에서 " HBM 수요가 엔비디아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라며, "퓨리오사AI 등 다른 AI 기업들도 HBM을 탑재한 AI 가속기를 개발 중이어서 공급 부족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김 연구위원은 "미중 무역갈등은 1980년대 미국-일본 반도체 갈등과 유사한 패턴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극적인 화해가 없는 한 갈등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우리나라도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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