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사실상 석탄발전소의 폐쇄를 강제하는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 규제 제정을 발표했다.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자국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규정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새 규정은 발전소 오염물질 및 매연 배출 제한, 수자원 오염 방지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2032년까지 발전소 온실가스 배출량을 90% 줄여야 한다는 조항이 골자다.
새 규제 중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제한이다. 이 규정은 새로운 천연가스 화력발전소와 기존 석탄 화력발전소가 배출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무화한다. 석탄발전소는 2039년까지 문을 닫거나 탄소 배출의 90%를 포집해야 한다.
추가적인 규제로는 석탄 회재 처리에 대한 연방 정부의 감독 강화와 발전소 폐수 중 유독 금속에 대한 제한 등이 있다. 이러한 조치는 이러한 오염 물질이 공중 보건과 환경에 미치는 위험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규제는 한 세기 이상 동력을 공급했던 화석연료인 석탄발전의 종말을 의미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PA는 이 규정들의 시행이 2047년까지 최대 1200명의 조기 사망을 방지하고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발전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2047년까지 13억8000만 톤까지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내연기관차 3억2800만 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맞먹는다.
또 이 규정이 매연과 같은 다른 오염물질들이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막아줌으로써 지금부터 2047년 사이에 1200억 달러의 공중보건상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2035년 한 해에만, 이 규정이 최대 1200명의 조기 사망자, 870명의 병원 및 응급실 방문, 36만 건의 천식발작, 4만8000명의 학교 결석일수, 5만7000명의 실직일수를 예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럴드 위머 미국폐학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NYT와의 인터뷰에서 “오늘은 공중보건, 특히 어린이 건강에 좋은 날”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규정들의 성공 여부는 법적 내구성과 11월 미 대선 이후의 정치적 지형에 달려 있어 잠재적인 반전이 있을 것으로 외신들은 보고 있다.
한편, 이번 규정은 발표되자마자 공화당과 전력회사, 석탄산업 등의 반발을 샀다. 이들은 새로운 온실가스 규제가 일자리를 줄이고 정전사태를 증가시키며 전기요금을 인상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PA는 석탄발전소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90% 이상 감축할 수 있는 탄소포집(CCS) 설비를 갖추고 있다면 2032년 이후에도 가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행 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석탄 산업 무역 단체인 '아메리카스 파워'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미셸 블러드워스는 “우리는 그것이 완전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디슨전기연구소(EEI)의 댄 브룰렛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도 이날 성명에서 “탄소 포집 및 저장(CCS)은 아직 경제 전반에 걸쳐 본격적인 배치를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며 2032년까지 규정 준수에 필요한 CCS 인프라를 허가하고 재정을 조달하고 구축할 충분한 시간도 없다”고 우려했다.
주정부의 반발도 나왔다. 패트릭 모리시 웨스트버지니아주 법무부 장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환경보호청 규정 취소를 위한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몇 몇 법률 전문가들은 로이터를 통해 “이번 규정이 온실가스 배출을 통제하기에는 최적화된 시스템”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천연가스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빠진 것을 감안해도 소송 과정에서 규정을 지켜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 행정부는 과거에도 비슷한 규정을 내놨다가 소송에서 패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석탄 발전의 온실가스 규제 관련해 한국 상황은 어떨까?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석탄발전용량을 계속 줄여오다 2021년 이후 다시 늘려 지난해 40.1GW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과 2023년 강릉 안인 1, 2호기가 가동을 시작했고 이번 달엔 삼척블루파워 1, 2호기가 새로 가동을 시작한다.
한국은 여전히 구체적인 탈석탄 플랜을 마련하는 대신, 석탄발전이 연장될 수 있도록 법령 개정, 암모니아 혼소 등의 방안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에도 영흥, 삼척, 신보령 발전소를 비롯해 각종 석탄발전소에서 암모니아 연소 계획이 지속해서 나왔다. 기후솔루션 정석환 연구원은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고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체하는 대신, 암모니아를 탈석탄 전환의 핵심으로 삼는 것은 석탄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과 같고, 이로써 석탄에 대한 국가 의존도를 연장해 기후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석탄발전 의존이 이미 국가 경제적 위험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솔루션이 올해 발간한 ‘기후위기에서 경제위기로: 한국전력 적자 및 채권 발행 영향과 대응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은 2022년 한국전력의 전력 구입 금액을 연간 20~30조 원(석탄 10조 원, 가스 20조 원 등)가량 증가시켰다. 결국 한전의 누적 적자는 50조 원까지 확대됐다. 한전은 경영을 유지하려고 채권 발행을 확대하고 단기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기후솔루션 고동현 기후금융팀장은 “한전의 이러한 채권발행 확대가 물가, 금리 상승기의 금융 시장을 더욱 불안정하게 하며 금융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GEM의 석탄 프로그램 디렉터 플로라 샹페노아는 “석탄발전소를 폐쇄할 국가는 더 조속히 폐쇄에 나서고, 신규 석탄발전 계획이 있는 국가는 석탄발전소 건설을 중단할 계획을 명확히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고 청정 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이 가져올 편익을 빼앗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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