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주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며 전고점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의 여파로 1분기 실적이 급감했지만, ‘밸류업’ 기대감이 다시 살아나면서 대표적 저평가주인 은행주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모양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10개 은행 및 은행지주사로 구성된 KRX 은행 지수는 이날 전일 대비 3.86포인트(△0.45%)하락한 845.88로 장을 마감했다.
연초 600 중후반대에 머물렀던 KRX 은행 지수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소식이 알려진 1월 말부터 급격하게 반등하기 시작해 지난 3월 14일 881.24까이 오르며 900선 돌파를 눈앞에 뒀으나, 홍콩 ELS 손실 사태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 밸류업 상승세 후 찾아온 단기 조정 등의 요인으로 인해 약 한 달 만인 지난달 17일 719.37까지 18.4%나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주요 은행지주사의 실적 발표에 이어 이달 2일 금융위원회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다시 은행주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앞서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지주사는 지난달 말 1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이들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총 4조22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00억원(△12.1%) 감소했다.
4대 금융의 올해 1분기 실적이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홍콩 ELS 사태로 대규모 충당금을 쌓은 점을 고려하면 선방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4대 금융의 1분기 순이익을 전년 동기 대비 18.8% 줄어든 3조9815억원으로 추정했는데, 실제 순익은 이를 상회했다.
밸류업에 대한 여전한 기대감도 은행주 상승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며 밸류업 프로그램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세제 지원 등 구체적인 인센티브가 빠져 오히려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등 발표 직후에는 오히려 기대감이 낮아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밸류업 추진 의지를 반복해서 강조하면서 은행주에 대한 투심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 지난 13일 정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대책을 발표하며 은행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지만, 이후에도 은행주는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증권가는 하반기 들어 은행권 실적 부담이 완화되면서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주가 재평가에 성공했다. 배당 제도 개선으로 연초까지 배당 플레이가 연장되던 가운데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기대감에 강하게 반응했다”라며 “상생금융, ELS와 같은 대규모 비용 부담, 총선 등 정치 이벤트를 거치며 밸류업 대장주 지위가 더 굳건해졌다”고 평가했다.
은 연구원은 이어 “상생금융과 ELS라는 굵직한 비용을 털어낸 만큼 하반기 실적은 편안하다. 추가 충당금 부담은 정점을 통과했고, 약 10조원 이상의 곳간도 확보해 둔 상태”라며 “점진적인 주주환원정책 확대와 매크로 안정화에 기댄 주가 상승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홍콩H지수가 반등하면서 1분기 은행 실적을 끌어내린 홍콩 ELS 사태의 손실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는 예상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연초 5000대까지 떨어졌던 홍콩H지수(HSCEI)는 21일 오후 4시 현재 6830.80으로 7000선에 근접한 상태다.
홍콩H지수가 7000대로 진입하면 홍콩 ELS를 판매한 6개 은행의 예상 손실액은 4393억원으로 6500일때의 추정 손실액(7992억원)보다 3599억원이나 감소하게 된다. 만약 지수가 7500까지 오를 경우 7월부터는 손실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1분기 ELS 영향으로 크게 하락한 은행권 실적이 2분기부터는 회복될 가능성도 있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에도 은행계 금융지주는 견조한 실적을 지속할 전망”이라며 “1분기 소폭 상승했던 순이자마진(NIM)은 2분기부터 재차 하락하고 대출성장도 상반기 이후 둔화되겠지만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은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이어 “ELS 부담이 컸던 KB금융을 제외하면 금융지주·은행의 올해 예상 지배순이익 증가율은 7~13%에 이를 전망”이라며 “고금리 고착화에 따른 건전성 악화와 규제 리스크 심화 우려가 있지만, 금융지주의 주주환원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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