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망월동 5·18민주묘지 1구역 1번은 김경철 열사의 묘지입니다. 1번이라는 것은 5·18 최초의 희생자라는 뜻입니다. 첫 희생자인 김경철은 시위대도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그해 5월 그는 백일이 갓 지난 딸을 둔 스물여덟 살의 아빠였습니다.
그는 5월 18일 가족모임 차 찾아왔던 처남이 영암에 간다기에 차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러 나왔다가 친구들을 만나 금남로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귀가 중이던 경철과 친구들은 공수부대원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친구들은 도망가고 경철만 잡혔습니다. 군인들은 경철을 둘러싸고 무조건 몽둥이로 내리쳤습니다. 경철은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줬지만, 군인들은 주민등록증 따위는 보지도 않고 짓밟았습니다. 군인들은 경철이 자신들을 비웃는다며 더욱 심하게 가격했습니다. 경철이 군인들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며 애원했지만, 벙어리 흉내를 낸다며 오히려 더 심하게 구타했습니다. 결국 경철은 뒤통수가 깨지고, 눈이 터지고, 팔과 어깨가 부서졌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으깨져 죽었습니다.
그는 왜 공수부대원들에게 웃었던 것일까요? 죽어가면서 왜 벙어리 흉내를 냈던 것일까요?
그는 농아인이었습니다. 말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사람을 보면 웃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사람을 보면 ‘그냥’ 웃지 않지만, 장애인들은 ‘그냥’ 미소를 보냅니다. 그들의 웃음은 천사의 미소이자, 절규입니다. 하늘에서 말 못 하는 그들에게 미소를 준 이유는 천사의 미소로 세상을 헤쳐가라고 준 특별한 선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미소는 절규입니다.
그들은 미소밖에 보여줄 게 없고, 그 미소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러 왔다는 계엄군이 아무런 소요를 일으키지 않은 장애인을 무차별 가격해 살해한 것입니다. 공수부대원들은 농아인 김경철의 절규를 듣지 못했고, 장애인이라는 신분증을 보여줘도 보지 않았고, 다리를 잡고 매달리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인 것입니다.
군인들이 왜 그렇게 살벌했던 것일까요? 물론 살기를 띤 공수부대원들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은 젊은 공수부대원의 증오를 부채질한 신군부 권력에 있습니다. 인간인 이상 농아인의 절규를 알아들었어야 했고, 비록 그것이 가짜 흉내일지라도 왜 저렇게 처절하게 애원하는지를 살펴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은 저항하지 않고 백기투항의 상태에서 살려달라고 비는 순수한 젊은이를 죽였습니다. 권력에 취한 신군부가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무시무시한 증오를 퍼부었습니다. 그 증오에 감염된 젊은 군인들은 시내로 나가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더욱 끔찍합니다. 경철의 어머니가 아들의 시신을 찾아낸 곳은 상무대 영안실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시신을 그곳에 임시 보관한 것입니다. 경철의 어머니가 수의를 만들어 상무대를 다시 찾아갔을 때 군인들은 4시간 동안이나 그녀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군인들은 그녀가 온 것도 모르고 호스로 물을 뿌려가며 긴 손잡이가 달린 수세미로 시신을 벅벅 문질러 피를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수의를 입히기 위해 시신을 덮고 있는 흰 천을 걷었을 때 어머니는 다시 한번 까무러쳤습니다. 아들의 시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처참하게 찟기고 깨지고 부서져 있었습니다. 발가락마저도 군홧발에 짓밟혀 으깨져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 위로 쓰러지면서 외쳤습니다. “차라리 총에 맞았더라면 이 엄청난 고통은 피했을 텐데, 차라리 총에…”
어머니가 다시 찾아갔을 때 아들의 시신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내 아들을 어디다 버렸느냐! 이놈들아, 내 아들 내놔라!!”
어머니가 죽을힘을 다해 쫓아다니고 부르짖고 한끝에 아들의 시신을 찾아낸 곳은 101사격장이었습니다. 군에서 한 구의 시신이라도 줄일 요량으로 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시신을 사격장에 가져다 묻은 것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군인들이 살벌했던 것일까요? 물론 공수부대의 잔인함이 문제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을 장악하려고 어지러운 시국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신군부의 사악한 자기도취와 증오가 더 큰 문제입니다. 정치세력화한 신군부의 야욕이 공수부대의 증오를 부추겼고, 그 증오에 전염되고 자극받은 공수부대원들은 천사의 미소나 인간의 절규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아 죽여버린 것입니다.
이 문제는 5·18항쟁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교훈을 통해 이제 여기에서 아픔을 극복하자고 흔쾌히 합의하지 못한 상태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해다마 5월 18일이 되면 5·18민주항쟁이 북한의 사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도를 드러내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국민화합보다는 분열을 통한 자기 이익이 우선입니다. 세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간단없이 상대 진영을 향한 증오를 부채질합니다. 이 작으면서도 심각하게 나뉜 땅에서 가장 우선적인 덕목은 국민화합일 수박에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특히 집권 세력은 국민을 보듬어 끝까지 감싸 안고 나가야 합니다. 진지하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정치인에게 국민은 야박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그런 정치인들이 나타나기를 오랫동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치인은 국민의 별입니다. 정치인들이 편 가르고 증오를 부채질하면, 가장 먼저 약자들이 희생됩니다. 증오는 미소와 저주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승리는 누군가를 희생시켜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약자들을 먼저 보살피는 정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임순만 작가 · 전 언론인(국민일보 전 편집인)
임순만 전 언론인
저작권자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 많은 기사는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세사기피해지원특별법 시행 1년, 무엇이 달라졌나 (0) | 2024.05.27 |
---|---|
"안전신문고에 민원 넣었더니 소름끼치는 전화가..." (0) | 2024.05.27 |
국토부, 준공 앞둔 아파트 특별점검, 대상은? (0) | 2024.05.22 |
중기부, 우주항공 스타트업 육성...한국판 스페이스X 나올까 (0) | 2024.05.21 |
사법 불신 초래하는 재판 지연, 해결 방안은? (4) | 2024.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