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뻥튀기 상장 논란을 일으킨 '파두' 사태 이후 기술특례 상장 기업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혁신 기술을 기대하고 상장 특혜를 줬지만, 실적 부진으로 ‘좀비 기업’으로 전락하는 상장사들이 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어서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파두’ 사태 이후 한국거래소 상장 심사가 대폭 강화되면서 심사 문턱을 못 넘거나 상장 신청을 철회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기술특례 상장으로 코스닥에 상장하려는 기업들에 대한 거래소 심사가 강화되면서 올 들어 3곳이 미승인 통보를 받았다. 심사를 자진 철회한 기업도 10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로 실적은 없고 기술만 있거나, 실적은 있지만 미래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된 곳들이다.
지난해 파두 사태를 계기로 거래소가 기술특례 상장 심사 문턱을 높인 결과다.
지난 8월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한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 파두는 상장 직후 분기 매출액이 5900만원에 그친 데다 이를 공시하지 않아 ‘뻥튀기 상장’ 의혹을 받았다. 앞서 파두는 상장 전 제출한 투자설명서에서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약 177억원에 달한다며, 연간 매출액을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1203억원으로 추정했다. 이에 코스닥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1938억원 공모가로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퀄리타스반도체는 지난달 7일 595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알렸다. 해당 기업은 지난해 10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하지만 불과 상장 반 년 만에 공모자금(300억원)의 2배 규모 유증을 하면서 주주들 간 “주주 가치 훼손”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실제 유상 증자 발표 다음 날인 주가가 22% 넘게 하락 마감한 데 이어, 13일까지 4거래일 연속 총 28% 급락했다.
지난 4월에는 사이버 보안업체 시큐레터가 코스닥 상장 7개월 만에 주식매매거래가 정지됐다.
시큐레터가 상장폐지 위기에 처한 건 지난 4월 5일 외부감사인으로부터 감사보고서 의견 거절을 받고 나서다. 외부감사인 태성회계법인은 의견 거절 근거로 회계부정 조사, 주요 감사절차 제약을 꼽았다. 한국거래소는 시큐레터에 내년 4월10일까지 개선기간을 부여하면서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하라고 권고했지만 상장폐지 사유를 말끔히 해소할 때까지 주식거래는 정지된다.
유전체분석 바이오기업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는 최근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개시’, ‘회사재산 보전처분, ’포괄적 금지명령, 신청서를 접수했다. 이 회사는 2023년 ‘의견거절’ 감사판정을 받음에 따라 지난달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 거래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해당회사들은 모두 기술특례 상장을 통해 코스닥에 입성한 기업들이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특례로 상장된 32개 기업에서 매출추정치를 달성한 기업은 단 1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들 중 80% 가량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혁신 기술을 기대하고 특혜를 줬지만 실질적으로는 좀비기업을 양산하는 통로로 변질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특성상 미래 실적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은 계속해서 제도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고 나섰다.
기술특례로 입성한 종목 중 상당수가 매출액 요건 등을 충족하지 못해 관리종목에 지정될 위기에 처한 것도 심사를 강화한 배경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이 좀비기업 증시 퇴출에 강한 의지를 밝힌 것도 특례상장 신청 기업들에 대한 꼼꼼한 심사가 필요한 이유와 맞닿아 있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자본시장 투자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선별 기능을 강화하면서 상장 주관사의 책임성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개선방안에는 '상장 신청-심사-사후관리'에 이르는 전 단계에서 제도와 집행 관행을 개선하는 14개 세부과제가 포함됐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11월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선방안 시행을 위한 코스닥시장 상장 규정 및 시행세칙 개정을 예고한 바 있다. △주관사에 대한 풋백옵션(환매청구권-공모주 청약으로 배정받은 주식의 가격이 상장 후 일정 기간 동안 공모가의 90% 이하로 하락할 시 주관사에 이를 되팔 수 있는 권리) 강화 △주관사의 보호예수기간 연장(3개월→6개월) 등이 골자다.
풋백옵션 경우, 이를 부여할 조건이 추가됐다. 상장 후 2년 이내 관리·투자 환기 종목 지정, 상장 폐지 사유 발생 등 때도 풋백옵션이 적용된다. 부실한 기업을 IPO하는 데 따른 주관사의 책임을 높인 조치다.
또 한국거래소는 부실기업의 증시 조기 퇴출을 위해 매매거래 정지 기간을 코스피는 기존 4년에서 2년으로, 코스닥은 3심제에서 2심제로 줄이기로 했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코스닥 규정상 관리종목 지정을 매출 기준 5년, 손실요건 3년 등을 유예받는다. 5년 안에는 매출 30억 원 이상을 기록해야 상장이 유지된다. 아무리 기술특례라도 이 요건을 맞추지 못하면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만 특례상장 기업이 애초에 혁신기술력을 바탕으로 재무요건을 면제받은 만큼 특례상장 기업의 상장요건인 기술성 평가의 역량과 특례상장 기업과 관련한 투자자보호가 보강된다면 특례상장 제도는 코스닥 시장에서 더욱 중요한 상장방식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2022년 ‘특례상장 기업의 성과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특례상장 기업들은 일반상장과 다른 상장요건을 통해 상장하여 안정적인 재무성과를 보이지 않았지만 IPO 자금조달의 비용이 일반상장 기업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들의 평균적인 장기 주가성과는 시장지수나 일반상장보다 좋았으며 바이오 기업들로 비교 대상을 한정하더라도 일반상장과 유사하였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주가 성과는 상장 4~5년차에서 좋아지고 있었으며, 소수의 일부 기업들은 일반상장에서 볼 수 없는 매우 높은 주가 성과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관리종목 지정 비율도 일반상장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분석 결과로 미루어 볼 때, 특례상장 제도는 기술성장기업에게 IPO 자금조달의 기회를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차별화된 상장요건을 통해서도 상장할만한 기업을 새롭게 발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기술성과에 관한 공시제도를 발전시키고 특례상장 기업들의 공시 위반이나 불공정거래의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본 보고서를 작성한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선임연구위원은 11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기술특례 상장기업들은 애초에 R&D 투자와 기술로 인정받았기에 재무제표 상 매출이나 수익이 (단기간에) 나오기가 굉장히 쉽지 않은 구조에 있는 기업들”이라면서 “지금은 이런 기업들에 대한 개인 투자도 많다보니 우려도 커진 건데, 그만큼 정보 비대칭성이 크니까 그렇다”며 유형자산의 기업의 잣대로 무형자산의 기업을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또 “좀비기업이 많이 양성되지 않는 한 가지 방법으로는 상장문턱을 높이는 것인데, 이 경우 정말 좋은 기업들이 상장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것도 비용”이라면서 “상장폐지 요건을 세게 한다고 해서 좋은 기업이 들어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또 어려운 점이 있다. 우리나라 시장의 특성상 개인투자자들이 (기술특례 상장기업에) 많이 투자하고 있는데, 상장폐지를 급격하게 시키면 완전 절벽이어서 이들한테 너무 큰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이런 (기술특례 기업의) 금융 사이즈를 뒷받침할 수 있는 파이낸싱 구조가 필요하다”며 “특례성장기업을 받아준 이유는 그 기업의 성장성 중에 몇 개가 점프돼서 그게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또 이 기업들을 상장시킴으로써 벤처기업들에게 다시 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가 유지된다”라고 강조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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