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 시도가 정부의 ‘밸류업’ 기조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두산은 지난 11일 사업구조를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첨단소재 등 3대 부문으로 재편하고 계열사를 사업 성격에 맞는 부문에 위치하도록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의 핵심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로 흡수시키는 것이다. 현재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와의 합병 및 포괄적 주식교환을 거쳐 100% 완전자회사로 만든다는 것. 두산밥캣을 품은 두산로보틱스는 스마트머신 부문을 이끌게 되며,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퓨엘셀 등과 함께 클린에너지 부문에 주력하게 된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상장사 지위를 유지하지만, 두산로보틱스에 흡수될 두산밥캣은 상장폐지된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 반대하지 않는 두산밥캣 주주는 두산밥캣 1주당 두산로보틱스 주식 0.6주를 받게 되며,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는 두산에너빌리티 1쭈당 두산로보틱스 주식 0.03주를 받게 된다.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뒤 계열사 주가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알짜 계열사인 두산밥캣을 품게 된 두산로보틱스의 주가는 지배구조 개편한 발표 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두산로보틱스 주가는 공시 전날인 10일 종가 기준 8만원이었으나, 지난 12일 10만5700원까지 급등했다가 17일 현재는 상승세가 진정되며 8만5100원까지 하락했다.
반대로 알짜 계열사를 내주게 된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10일 2만1850원에서 12일 2만900원까지 급락했다가 하락분을 소폭 회복하며 17일 2만12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요동치는 주가처럼 일반주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의 일반주주들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득을 본 것은 두산그룹 오너일가뿐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지주사인 두산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두산에너빌리티(30%)에서 높은 두산로보틱스(68%)로 두산밥캣을 옮기게 되면, 두산밥캣에 대한 두산의 지분율도 14%에서 42%로 높아지게 된다.
반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알짜 계열사인 두산밥캣이 다른 계열사로 흡수되는 데다 주식 교환비율마저 불공정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실제 두산밥캣은 지난해 연간 매출 9.8조원, 영업이익 1.4조원을 기록하며 두산에너빌리티 전체 영업익의 94%를 벌어들였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2015년 설립 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는 데다 매출 규모 또한 500억원대에 불과하다.
이런 상태에서 두산밥캣·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주식 교환비율을 1:0.63, 1:0.03으로 정한 것은 기업가치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식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고평가를 받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와 대표적인 저평가주로 꼽히난 두산밥캣을 시가총액만으로 비교해 교환비율을 정할 경우 기업가치의 본질을 반영할 수 없다는 것.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12일 논평을 내고 “두산밥캣 일반주주들은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인 530억 원에 불과하고 무려 192억 원의 영업손 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상황”이라며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해서, 결국 본질가치를 찾아갈 것이라 고 믿고 오래 보유하려던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로봇 테마주로 바꾸던지 현금 청산 을 당하던지 양자 선택을 강요 받는 날벼락을 맞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상장사 합병 시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한 자본시장법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실제 행동을 해서 모두가 기대하는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은 두산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이런 일을 누구도 저지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우리의 법과 제도,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이라고 강조했다.
두산밥캣의 지배권을 이전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17일 논평을 내고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일반주주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지배권 이전 방식은 가격 협상을 통해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에 직접 매각하는 방식”이라며 “두산에너빌리티 이사회는 두산로보틱스에게 두산밥캣 주식을 직접 인수할 것을 요구했어야 하며, 두산밥캣 이사회는 주식 교환이 아닌 공개매수의 방법을 통해 두산밥캣 잔여 지분을 매입할 것을 요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어 “하지만 두 회사의 이사회는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일반주주의 이익보다는 그룹의 이익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사외이사들은 독립이사로서 회사와 주주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기보다는 그룹에서 하달한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금이라도 두산로보틱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분할합병-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을 철회하고, 지분 직접 인수방식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임해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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