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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임순만 칼럼] 청년의 꿈이 살아 있는 나라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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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 요인들이 가장 바랐던 것 중의 하나가 후세대를 키우는 것이었다.

1920~30년대 임정에는 임정 청사에서 태어나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 ‘두동이’가 있었다. 하나는 김의한·정정화의 아들인 1928년생 ‘후동’(훗날 ‘자동’으로 이름 변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지냄)이 였고, 또 하나는 엄항섭·연미당의 아들인 1929년생 ‘기동’(한국전쟁 중 납북)이였다.

 

이 아이들이 태어났을 무렵에 임정은 경제적인 곤궁으로 청사 집세마저 내기 어려웠고 임정요인들은 끼니를 걱정해야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인 김의한과 엄항섭은 상해에서 취직해 임정의 어른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월급을 받아다 석오 이동녕, 성재 이시영, 백범 김구 같은 어른들에게 밥을 해드려야 했다. 어른들은 이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정정화의 자서전 <장강일기>에 보면 점심을 못 먹은 백범 선생이 오후 늦게 찾아와 “후동 어멈, 나 밥좀 줄라우?”하면 정정화는 “여태 점심도 못 드시고 다녔어요?”하며 후동이를 백범에게 맡기고 뽀르르 장을 보러 갔다. 후동이는 다른 사람에게 가면 우는 아기였는데, 백범이 얼마나 아기를 잘 보는지 까르르 까르르 하며 잘 놀았다고 한다.    

 

독립 지사들에게 자라나는 후세들은 미래의 꿈이었다. 해방 후 환국한 백범이 어느날 경교장에서 임정 요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없이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어린아이들이 뒷담을 넘어 경교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경교장에 틈입한 아이들이 어디로 숨어들까 하고 기회를 엿보는 중에 백범이 나타났다. 무서운 ‘호랑이 할아버지’로 소문난 백범을 보자마자 날랜 아이들은 도망가기 위해 뒷담에 매달렸고, 나머지는 겁에 질려 뒤로 나자빠졌다.

 

“어린이 동무들! 다 이리로 오기요.”

 

할아버지가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자 아이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백범은 코를 흘리며 다가온 아이들은 일일이 안아주었다.

백범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과자를 나누어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날 엿장수가 집 앞으로 오자 엿을 먹고 싶었던 아이는 아버지의 숟가락을 분질러 문 밑으로 내민 후 엿과 바꿔먹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백범이 아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그 아이가 저녁때 일터에서 오신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을 했어요. 그때 아이는 야단을 맞았을까요? 맞지 않았을까요?”

 

아이들은 전부 “된통 야단을 맞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백범은 “전혀 아버지로부터 야단을 맞지 않았다”며 “야단을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백범은 덧붙였다. “나도 너희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뒷담을 넘지 말고 정문으로 들어와 놀아라.”

 

백범이 경교장 뒤뜰에서 아이들을 앉혀놓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조소앙 외교부장이 유리창을 통해 목격했다. 그다음 날 조소앙은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젊은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해외생활 수십년에 여러 가지 고통도 많았지만, 가장 큰 고통은 조국의 중심이며 맥박인 청년이 굶주렸다는 것이다. 이제 청년 앞에 오니 수십년의 주림이 풀리는 것 같다. 우리의 정강은 새로운 민주주의다. 투표를 통해 실현되는 민주주의,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는 교육적 개방, 반역자와 친일파의 토지를 몰수하여 민중의 생활향상을 꾀하고 자본의 국유를 도모하는 경제의 개방을 목표로 한다. 청년은 정의를 씩씩하게 실행하라.”

 

김원봉 군무부장도 기자들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 통일되지 못한 조국을 볼 때 청년들과 같이 마음이 탄다. 청년은 강해야 한다. 우리가 아직 통일되지 못한 것은 청년이 약해서가 아니라 지도자가 적기 때문이다. 우리 청년들은 애국지사들을 잡아 죽인 반역자를 복수해야 한다. 청년은 혁명의 주인공이며 국가 흥망의 채임자이다. 청년은 끓기 쉬운 정열을 억눌러 냉정한 이성을 살려서 시간과 공간을 넓게 보고 돌진해야 한다.” 

 

임정 요인들이 돌아온 지 얼마 후인 1945년 12월 19일 시내 50여개 청년 단체들이 모인 가운데 천도교 대강당에서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 결성식이 열렸다. 조소앙이 연설했다. 

 

“내가 가장 존애하는 청년 제군을 대하니 반가움과 기쁨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청년의 임무는 무엇인가. 개인이나 국가의 기본적 요구는 세력과 부력과 지력의 요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세력을 빼앗겼으니 이것을 회복해야 하겠고, 우리는 부력을 잃었으니 이것을 찾아야 하겠고, 우리는 지력을 위축당했으니 이것을 신장해야 하겠다. 이것은 청년의 당연한 임무다. 이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까. 우선은 주권의 회복 즉 복국(復國)에 있다. 무엇보다 좌우가 협력하고 남북이 통일되어야 복국은 성립된다. 좌우가 싸우고 남북이 합하지 않으면 외국군대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복국의 다음 단계는 건국이다. 건국의 수단은 사회의 공동요구를 파악해 이것을 만족시킬 시책을 세우고 과거의 결함을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합친 힘으로 복국과 건국이 실현되면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발언권이 생기고 완전한 독립이 온다.” 

 

엄항섭 임정 선전부장도 말했다. “외국인들은 흔히 우리를 보고 너희들은 개인적으로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사람들이면서도 어찌하여 한데로 모이기만 하면 싸우느냐고 한다. 우리는 남을 깎고 흠잡고 잡아당기는 악습을 버리고 남을 사랑하고 칭찬할 줄 아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왜적에게 망했던 역사적 사실을 냉정하게 돌아보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자유독립의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잡과 편파의 정치가 아니라 삼천만 대중에게 정정당당하게 호소하는 정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일에 청년들의 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조소앙, 김원봉, 엄항섭이 청년들에게 강조한 복국과 재건론은 김구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할 당시부터 광복군 청년들에게 일관되게 당부한 임정의 꿈이었다. 이런 청년들을 향한 꿈은 국가를 다시 세워야 했던 해방 후뿐 아니라 인구가 줄어드는 오늘날에는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영화로 만들어져 다음 달 개봉한다고 한다. 이 작품은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에 이민 간 사정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는 소설이다. 작가는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했을 당시 뉴스사이트 댓글들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안 선수의 선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들은 한국 빙상계를 한국 사회 전체의 모습으로, 빙상연맹을 한국 정부의 모습으로 보고 안 선수의 러시아 귀화를 통해 국가에 대한 맹렬한 거부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자극이 이 소설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 계나는 한 금융회사 신용카드팀 승인실에서 근무하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한국이 싫다는 이유로 호주로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힘들어서 온 호주였지만 호주도 그녀에게 쉽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많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힘들게 정착에 성공한 계나는 한국에 들어왔다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다시 호주로 떠난다. 첫 번째 호주행은 한국이 싫어서였다면, 두 번째 호주행은 자신의 행복을 호주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호주를 낙관적인 기회의 땅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외국인의 입장으로써 한국보다 더 냉혹하고 적응하기 힘든 곳으로 그린다. 하지만 그곳에는 한국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인텔리 직종이나 노동계층이나 월급 차이가 크게 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원한다. 

 

세대와 계층에 따라 서로 다르겠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고쳐야 할 것은 차별과 갈등일 것이다. 임정 선전부장 엄항섭이 연설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사람들이면서도 모이기만 하면 싸운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여야 간 우리나라보다 더 심하게, 끊임없이 싸우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우리는 남을 깎고 흠잡고 잡아당기는 악습을 버리고 타인을 사랑하고 칭찬할 줄 아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젊은이들이 환멸에 빠지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한국을 싫어하지 않고 내 나라의 꿈을 키우게 하기 위해서는.

 

 

 

임순만 작가 · 전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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