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금융투자소득세 논쟁으로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여당이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며 야당을 압박하는 가운데, 금투세 도입이 증시에 미칠 영향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 한동훈, “민주당, 금투세 폐지 민생토론 나서라”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 7일 공지에서 “국민 대다수가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는 상황에서 제도 시행 여부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가 제안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방침에 대해 국회에서 전향적 자세로 조속히 논의해 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최근 미국 경기 경착륙 우려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글로벌 증시가 등락을 반복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우리 증시도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주가 하락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이 강행될 경우 대부분이 중산층인 1400만 일반 국민 투자자가 피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또한 연일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에 금투세 폐지 민생 토론을 제안하며 “제가 여당의 당대표이니 연임이 확정적인 이재명 대표가 나오시면 더 좋겠지만, 어렵다면 박찬대 당대표직대와 제가 공개 토론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지난 6일에도 페이스북에서 “금투세 강행은 우리 스스로 퍼펙트스톰을 만드는 것”이라며 “대만은 1988년 금투세와 유사한 주식 양도세 도입 발표 직후 주가가 36.2%나 폭락했다. 우리가 왜 그 길로 가야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당정이 이처럼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그동안 야심차게 추진해온 증시 부양책이 자칫 실패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는 공매도 전면 금지, 깜깜이 배당 개선, 쪼개기 상장 규제 강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기부진 우려가 확산하면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고 국내 증시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투세가 도입되면 증시에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금투세가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증시가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금투세 시행으로 인해 큰손이 증시를 이탈하면 국내 증시가 상승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 금투세 시행은 1%가 아니라 100%가 피해를 보는 구도”라며 “상위 큰 손 1%가 빠져나가면 작은 손 99%는 하락 쓰나미를 피할 수 없고 100만 원을 투자한 분들도 손실을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 “금투세 도입하면 증시 폭락” 사실일까?
다만 금투세 도입으로 인한 증시 폭락 우려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경향신문이 지난 6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전날 기획재정부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의뢰해 2020년 받은 ‘주식시장 과세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는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는 파생상품 시장의 거래량 및 거래금액에는 단기적인 효과는 있었으나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의 장기적인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반적인 우려와는 달리, 금융자산에 대한 양도소득세(금투세) 부과는 반드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키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금투세 도입으로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지양하게 될 것이라는 당정의 주장과 상반된다.
파생상품의 경우 양도세 도입 이후에도 거래규모가 줄어들지 않았다. 앞서 정부
는 지난 2019년 주가지수와 관련된 모든 파생상품에 양도세를 부과하도록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파생상품 연간 거래대금은 개정안 시행 전인 2018년 45조95억원에서 시행연도인 2019년 46조5199억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후 파생상품 거래규모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 2021년에는 시행 전보다 50%가량 많은 67조2975억원까지 늘어났다가, 이후 감소해 지난해 58조6201억원으로 다시 줄어들었다.
금투세 도입의 실패 사례로 꾸준히 거론되는 대만도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TV토론회에서 “주식양도세는 대만에서 실시했다가 주가가 폭락해서, 그걸 제안한 경제 장관이 경질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한 대표 또한 페이스북에서 대만의 사례를 금투세 폐지 근거로 강조하고 있다.
실제 대만은 지난 1989년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50%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도입했으나, 해당 조치가 발표된 이후 대만 주가지수(TWSE)는 8789에서 5615로, 일일 거래량은 17.5억달러에서 3.7억달러로 급락했다. 이 때문에 당시 셜리 쿠어 재무장관이 사임했고, 대만 정부도 결국 주식양도세 부과 조치를 철회했다.
하지만 당시 대만은 한국과 달리 금융실명제가 시행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차명계좌를 통한 거래가 활발했다. 주식양도세를 도입하려면 실명제가 필수였고, 이 때문에 차명계좌가 드러나는 것을 우려한 자금이 대만 증시에서 대거 빠져나가게 된 것. 대만투자자들이 홍콩·싱가포르 등 해외 투자로 쉽게 옮겨갈 수 있었다는 점도 주식양도세의 실효성을 떨어뜨린 요인 중 하나다.
◇ 오락가락 금투세 여론, 국회 논의 전망은?
금투세 폐지에 대한 국민 여론도 아직 어느 한 쪽으로 크게 기울지 않은 상태다.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고 있는 데다, 그 차이도 크지 않기 때문. 앞서 한국갤럽이 지난 4월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44%로 “시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자(38%)보다 6%포인트 많았다. 특히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응답자 사이에서도 금투세 시행을 지지하는 의견(49%)과 반대(47%)의견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팽팽한 여론처럼 국회도 금투세 폐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김상훈,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7일 국회에서 첫 정책위의장 회담을 열고 민생 법안을 신속 처리하기로 합의했으나, 금투세 폐지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갈등이 여전히 봉합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금투세 폐지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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