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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손태승 친인척 부당대출 어떻게 가능했나?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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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진=뉴시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전임 회장의 부당대출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임 회장은 12일 오전 긴급 임원 회의를 열고 최근 불거진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적정 대출에 대해 “우리금융에 변함없는 신뢰를 가지고 계신 고객님께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이날 공개한 ‘은행 대출취급 적정성 관련 수시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이 전·현직 대표 또는 대주주로 등재된 사실이 있는 법인 및 개인사업자에 대해 총 454억원(23건)의 대출을 실행했다. 원리금 대납사실 등을 고려해 해당 친인척이 대출금의 실제 자금사용자로 의심되는 9개 차주 대상 162억원(19건)의 대출까지 더하면 부당대출 규모는 총 616억원(42건)으로 불어난다. 

 

◇ 손태승, 회장 재임 전후 친인척 대출 5억원→616억원으로 급증

 

손 전 회장은 지난 2017년 12월 우리은행장으로 선임됐으며 이후 우리은행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2019년 1월부터 우리금융지주 초대 회장과 행장직을 함께 수행하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지주 회장을 연임하며 행장직을 내려놓은 손 전 회장은 지난해 3월 임기를 마쳤다.

 

금감원에 따르면, 손 전 회장이 지주·은행에 지배력을 행사하기 전 친인척 관련 차주 대상 대출건은 4억5천만원(5건)에 불과했으나, 지주 회장직을 맡은 뒤 600억원대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지난달 19일 기준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중 총 19건(269억원)에서 부실이 발생했거나 연체 중이다. 

 

특히,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 중 28건(350억원)의 경우 대출심사 및 사후관리 과정에서 통상의 기준·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우리은행은 차주가 허위로 의심되는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사실 확인 없이 대출을 실행했다. 실제 우리은행은 A법인에게 부동산 매입 및 리모델링 자금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등기부등본상 해당 부동산 실거래가(20억원)가 차주가 대출신청 시 제출한 매매계약서상 매매가격(30억원)에 미달했음에도 사실 확인 없이 대출을 내줬다.

 

또한, 담보가치가 없는 담보물 담보설정, 보증여력이 없는 보증인 입보를 근거로 대출을 취급한 사례도 확인됐다. 우리은행은 B법인이 대출신청 시점에 완전자본잠식 상태이고 이미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돼 가용가액이 전무한데도 부동산 담보 설정 등을 근거로 해당 법인의 신용도를 상향 평가하고 20억원 규모의 대출을 내줬다.

 

대출취급 심사 및 사후관리과정에서 본점 승인을 거치지 않고 지점전결로 임의처리한 사례도 있었다. 우리은행은 C법인의 직전 대출이 본래 신청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사용돼 회수조치됐음에도, 용도외유용 이력이 있는 해당 법인에 대한 추가 대출을 본점 승인 없이 지점전결로 내줬다. 

 

금감원은 “지주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체계에서 지주 및 은행의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라며 “검사과정에서 발견된 차주 및 관련인의 허위서류 제출 관련 문서위조, 사기 혐의 등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건구조도. 자료=금융감독원

◇ 우리은행, 부실대출 관련자 사문서 위조 및 배임 혐의로 고소

 

한편, 해당 부적정 대출 중 다수는 전임 지역본부장인 임모씨가 주도적으로 취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올해 1~3월 실시한 자체검사를 통해 임모씨를 면직하고 성과급을 회수했으며, 부실대출 발생에 책임이 있는 관련 지점장 등 임직원 7명에 대해서도 감봉 등 제재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1차 자체검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5~6월 2차 검사를 추가실시한 뒤, 이를 통해 파악된 사실관계 등을 기초로 지난 9일 부실여신 취급 관련인에 대하여 사문서 위조 및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당국에 고소했다.

 

우리은행은 이번 부당대출 사건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최초 (대출)취급 시 해당 친인척이 전·현 대표 또는 대주주로 등재된 업체는 10개였으며, 그 외 업체는 대출 취급 후 사후 점검과정에서 원리금 대납 및 자금거래 등이 밝혀진 경우”라며 “특정인에 의한 지배관계를 대출 취급 전 파악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6~7월 중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해 부당여신에 대한 인터넷, 모바일 등을 이용한 다양한 내부자신고 채널 확대하고, 반복적으로 여신심사에 소홀한 영업점장에 대한 여신 전결권 제한 및 후선 배치, 여신 사후관리 등의 조치를 실효성 있게 강화했다”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직위에 상관없이 임직원들이 부당한 업무지시에 대해 내부제보를 할 수 있도록 업무처리절차를 대폭 개선하고, 금감원 검사결과를 적극 반영해 리스크를 공유하고 있는 차주에 대한 여신심사 절차 강화, 여신 감리 강화 등 추가적인 제도개선을 조속히 완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이어 “부실책임 규명을 위한 감독당국 및 수사당국의 조사 등에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며 “금감원 수시검사를 통해 추가로 발견된 위법·부당행위 관련 임직원에 대해서는 검사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 금융지주사 회장, ‘제왕적 권한’ 견제 장치 마련 시급

 

한편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이 공개되면서 금융지주사 회장의 지배력에 대한 견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금융지주사 ‘제왕적 회장’의 가장 큰 부작용이었던 장기 집권 관행은 사라진 상태다. 실제 윤 정부 출범 후 손 전 회장을 비롯해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 손병환 전 NH농협금융 회장 등 대형 금융지주사 회장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손 전 회장 또한 DLF 사태 관련 징계취소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며 연임 전망이 밝았지만, 결국 금융당국의 강력한 압박에 도전을 포기했다. 

 

하지만 장기 집권 관행이 사라졌다고 해서 금융지주사 회장에 대한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5대 금융 사외이사 36명은 지난해 이사회 안건 162건에 단 한 번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안건을 올리기 전 논의를 거치기 때문에 찬성률이 높다는 반론도 있지만, 단 한 명의 사외이사도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는 금융지주 이사회에게 경영진에 대한 견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도 지난해 12월 금융지주사 및 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 (best practice)을 발표하고 최고경영자(CEO) 선임 및 이사회 구성·운영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모범관행은 바람직한 지배구조에 대한 30개 원칙을 담고 있는데, 그 안에는 ▲사외이사 지원 전담조직 설치 및 이사회의 업무총괄자 임면·평가 관여 ▲CEO 상시후보군 관라·육성 및 외부 후보에 대한 공정한 기회 보장 ▲이사회의 전문성·다양성 확보 및 추천경로 다양화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금감원이 지난 5월 발표한 모범관행 이행상황 점검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은행 및 지주사는 모범관행 취지에 맞는 개선안을 마련하고 연내 이행완료를 목표로 하는 계획을 제출했으나 일부 지주·은행은 계획의 구체성이 떨어지거나 이행 여부 및 시기가 불명확한 것으로 나타났다.

 

CEO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금융지주사 및 은행의 자체적인 기업문화 개선 및 윤리경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올바른 기업문화의 조성이 시스템 보완 및 제도개선보다 더욱 중요하다”며, “상사의 부당한 지시는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직원을 조직이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 또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과거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인식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부분은 반드시 명확하게 규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라며 ““규정과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에 기반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One Strike Out)’ 제도를 통해 정도경영을 확고하게 다져 나가겠다”고 말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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