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두산그룹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 비율을 강행한 뒤 최근 국회에서는 ‘두산밥캣 방지법’이 발의됐다. 또 소액주주 침해 논란을 의식해 금융감독원이 횟수 제한 없이 정정요구를 하겠다며 두산 그룹을 저격하면서 오는 국정감사에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이 출석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1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대표 발의한 일명 두산밥캣 방지법(상법 개정안)이 지난달 19일자로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김현정 의원 외 17인의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대신 '공정의무'를 새롭게 추가하는 상법 개정안이다.
공정의무란 일반주주, 소액주주들을 차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예를 들어 두산그룹이 두산밥캣을 떼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주주들이 이사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사회 결정에 관여한 대주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층 더 강화된 법안으로 풀이된다.
이 개정안이 발의된 배경에는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의 합병 반대가 있다.
최근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간 분할·합병,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간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그룹의 사업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분할된 후 상장 폐지될 예정인 두산밥캣 주식은 두산에너빌리티와 특수관계인이 46.07%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6.97%를 보유하고 있고, 소액주주 비율이 46%다.
논란은 주식교환 비율,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는 밥캣의 주주가 연간 200억 원 가까운 적자를 내는 로보틱스 주식을 1대 0.63 비율로 받도록 정했기 때문이다.
연매출이 10조 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 원이 넘는 두산밥캣이 매출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에 불과한데다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것은 주권상장법인이 합병 등을 하는 경우 주가를 기준으로 하도록 한 현행법을 최대치까지 악용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밥캣은 소형 건설기계, 장비를 판매하는 회사로, 지난해 매출 9조8000억 원, 영업이익 1조4000억 원을 기록한 알짜 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두산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97%를 밥캣이 올렸다.
그렇다면 두산은 그룹에서 제일 돈을 잘 버는 캐시카우(현금창출원) 밥캣을 왜 이동시키려고 할까.
이번 사업 재편은 두산그룹 총수 일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밥캣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있던 두산그룹의 지배력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두산은 밥캣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지분만 갖고 있고, 두산에너빌리티가 밥캣을 소유하고 있는 형태다. 재편 뒤에는 두산의 두산로보틱스에 대한 기존 지분율이 68%에서 42%로 낮아지는 한편 두산로보틱스가 밥캣을 100%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 박정원 회장은 (주)두산의 지분 7.64%를 보유하고 있고, 이외 친인척은 보통주 지분 총 37%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정정신고서를 통해 주주 설득에 나섰다. 구조 개편안을 주총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소액 주주 설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정신고서에서도 논란이 된 합병비율(1대 0.63)은 그대로 유지한 채 합병 비율 산정 방식에 대한 내용을 추가했다.
두산그룹의 합병건과 관련해 시가 총액과 주당 가격으로 합병 비율을 정하는 자본시장법 조항이 이 합병안을 가능하게 했다는 지적에 금융당국도 들여다보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무엇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소액주주 권익 침해 논란이 일고 있는 두산 그룹을 연일 비판하고 나선 것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8일 자산운용사 CEO들과 간담회를 끝낸 뒤 기자들과 만나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그런 부분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정 요구를 하겠다는 것이 저와 감독원의 입장이다. 그 부분은 당국 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심사 중인 두산 측의 증권 정정신고서도 다시 반려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되며, 업계에서는 무척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다만 상법 제401조에 의해 주주의 직접손해에 대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도 인정이 되지만, 법원에서는 주주의 손해를 제한적으로 인정한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불공정한 합병 시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제수단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5일 발표한 ‘상장법인의 M&A 절차상 주주보호를 위한 과제-두산의 계열사 간 M&A 사례를 중심으로’ 보고서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두산 계열사 간 M&A의 경우 금융감독원에서 증권신고서를 정정 제출하도록 요구했지만 두산에서 법에서 정한 산식을 그대로 지키겠다고 할 경우 두산밥캣의 주주들이 자신의 손해를 주장하며 구제받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수단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합병비율이 불공정해도 법에서 정한 산식대로 했다면 주주들은 합병 무효의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고 실질적으로 구제를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또 “합병의 무효는 실제 사건화된 경우가 매우 적어 합병무효에 관한 대법원 판결은 3건에 불과하고, 법에서 정한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따른 이상 합병비율의 현저한 불공정으로 인한 합병무효는 인정되지 않았다. 법에서 합병가액의 산식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은 합병비율이 공정한지에 대해 면밀히 판단하지 않으며, 불공정의 입증책임도 오로지 주주의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일본에서 인정되는 합병유지청구권을 도입해 주주들이 불공정한 합병의 중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독일에서 인정되는 합병관계자의 손해배상책임을 도입해 주주들의 손해에 대해 이사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편, 올해 국정감사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일각에서는 박정원 회장의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 채택성도 제기되고 있다. 두산밥캣 방지법을 발의한 김현정 의원은 국회 정무위 소속이다. 만약 박정원 회장이 오는 국감에 출석하게 된다면 두산그룹으로서는 회장의 증인 출석이 두 번째가 된다.
앞서 고(故) 박용오 전 두산 회장은 지난 1999년 대기업 총수로서는 처음으로 국감에 증인출석했다. 당시 OB맥주와 두산음료의 합병 비율이 논란의 쟁점이었다. OB맥주는 3년간 2500억 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하며 자본잠식에 빠진 부실회사였다. 두산음료는 우량 기업이었음에도 합병비율이 시세에 근거해 1대 1.15로 정해졌다. 당시 주식시장 일각에선 두산이 양사 합병을 위해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파장이 일었다. 그리고 2024년 현재 두산그룹은 또다시 계열사 간 합병 비율로 논란의 중심이 됐다.
김현정 의원실 관계자는 12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금융당국 쪽에서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강경하게 메시지가 나가서 현재 (두산그룹 측의) 증권 신고서도 다시 반려될 것 같은데, 그 이면에 다른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안으로 박정원 회장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소환될 가능성과 관련해 관계자는 “그런 얘기는 듣긴 했는데 아직까지 국감에서 어떻게 하겠다까지는 정리된 게 있진 않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이코리아>는 두산그룹 측에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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