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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게임 심의 헌법소원' 청구인 18만명 돌파...전문가 의견은?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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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씨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 갈무리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을 유통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게임산업법 제32조 2항 3호가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오르며 게임 이용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게임 방송인 김성회와 한국 게임이용자협회가 주도하는 이번 헌법소원은 모집 시작 22시간 만에 10만 명 이상의 청구인 참여를 이끌어 냈으며 9일 18시 기준으로는 18만 명을 달성했다.

 

협회에 따르면 이는 지난 200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제기했던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 위생 조건 위헌확인 소송의 청구인 수 9만 5천 988명을 넘은 수치로, 역대 가장 많은 청구인이 참여한 헌법소원이다.

 

게임 방송인 김성회는 운영 중인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에서 “영화와 음반의 국가검열은 이미 20세기에 위헌판결이 나왔는데, 게임은 아직 국가기관의 사전검열이 남아있는 것이 문제다.”라며 “청구인 서명인단 수는 다다익선이다. 20만 명을 목표로 오는 27일까지 서명을 받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헌법소원 청구는 10월 초 헌법재판소에 제출될 예정이다.

이철우 게임이용자협회 회장 = 게임이용자협회 제공

이번 헌법소원을 대리하는 한국게임이용자협회 이철우 회장은 9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국민청원을 여러 차례 시도해보았으나 회기 만료로 인한 폐기, 의원들의 게임에 대한 이해도 부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처리 지연 등의 이유로 게임 이용자들의 국민청원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진 것 같다."라며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 이념과 입장을 뛰어넘어 게이머의 목소리를 한 곳으로 모아보자는 취지도 있었다."라고 다른 수단 대신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게임 이용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게임산업법 제32조 2항 3호의 모호성이다. 게임산업법 제 32조는 불법 게임물 등의 유통금지에 대해 규정하는 조항으로, 이 중 2항 3호는 “범죄ㆍ폭력ㆍ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물”의 제작, 반입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이 회장은 이번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조항인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2항 제3호가 범죄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등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2017년 발생한 “뉴 단간론파 V3”의 한국어판 발매 거부 논란이 뽑힌다. 당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해당 게임이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등급 분류를 거부했지만, 최근 심의 회의록이 공개되며 당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한 과도한 반응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단간론파v3나 모탈컴뱃 시리즈는 등급분류가 거부되었지만 범죄의 묘사를 넘어서 범죄 그 자체가 게임의 주된 내용인 GTA5는 무리 없이 등급분류를 받는 등, 그 기준의 적용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워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 뉴시스

헌법재판소가 매체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루게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6년에는 영화와 음반의 사전검열에 대한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영화법 제12조가 모든 영화의 상영 전에 심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었던 것을 문제 삼았다. 

 

당시에는 영화의 상영 허가를 좌우하는 ‘공연윤리위원회’가 행정권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영화 내용에 대한 사전 심의를 통해 상영 자체를 제한할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심의 방식이 명백한 검열로서 헌법 제21조에 위반된다고 판결했으며, 특히 헌재는 사전검열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가가 특정 콘텐츠를 사전에 통제할 수 없도록 했다. 이후 영화에 대한 심의는 사후적 규제 형태로 전환되었으며 등급 분류 체제를 통해 유통될 수 있게 되었다. 

 

대중음악 역시 과거 오랜 기간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음반을 낼 수 있어 이 과정에서 불확실하고 자의적인 심의 기준이 문제가 되어 왔다. 사전심의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심의를 거부하고 ‘아 대한민국’을 발매한 원로 가수 정태춘이나 가사 검열에 반발해 아예 음반에서 가사를 빼는 방식으로 항의한 서태지 등 음악인들의 저항이 이어졌다. 결국 1996년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는 폐지되었다.

 

이철우 회장은 이번 게임 검열에 대한 헌법소원이 과거 영화, 음반에 대한 헌법소원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을 상대로 한 제도권 내에서의 저항이라는 맥락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다. 표현의 자유와 이를 넘어선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에 대한 검열의 정도는 그 사회의 문화성숙도를 보여주는 한 지표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과거 텔레비전이나 힙합, 만화책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옅어져오다가 종국에는 자랑거리의 하나가 되었듯, 게임에 대해서도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이번 사건이 그 계기 중 하나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도 덧붙혔다.

 

다만 이 회장은 이번 헌법소원이 성공하더라도  당장 게임 검열이 사라지는 등의 극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짚었다. 이번 헌법소원이 위헌 결정으로 결론난다 하더라도, 여전히 게임물의 등급분류 및 거부와 취소에 관한 제21조 내지 제22조 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헌법소원이 성공하게 되면 적어도 영화, 드라마, 웹툰, 음악 등과 같은 기준, 동일한 잣대로 게임이 심의될 수 있도록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 뉴시스

한편 모든 전문가가 헌법소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교수는 이번 헌법소원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수단과 시점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9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헌법소원이 게임 산업의 심의 문제를 공론화할 수는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이 같은 강경한 접근법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자칫 이번 헌법소원이 실패할 경우 게임업계에 더 큰 역풍이 불 우려 또한 있다고도 우려했다.

 

김 교수는 "새로운 게임물관리위원장이 막 임명된 시점에, 아직 위원회의 방향성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헌법소원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추진되면서 사회적 공감대와 업계의 협조를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다고도 지적했다.

 

또 김 교수는 "게임물에 대한 사전 심의를 철폐해야 한다는 이용자들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절차와 구성원 간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해 아쉽다."라며 전문가와 학계, 업계와의 협력 속에서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 끝에 헌법소원이 진행되었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게임학회장을 역임 중인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는 9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이번 헌법소원을 "과도한 반응"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는 필요악이라고도 주장했다. 

 

위 교수는 “게임 산업에서 규제가 완전히 사라질 경우, 만약 문제가 터지게 되면 게임업계가 도매금으로 공격받게 될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세컨드 라이프’의 사례를 언급했다. 지난 2003년 미국에서 출시된 가상현실 플랫폼 세컨드 라이프는 가상 세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한때 큰 인기를 끌었지만 불법 도박, 아동 성착취, 사이버 폭력 등 여러 사회적 문제 역시 발생하며 가상 세계의 무분별한 자유가 도마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위 교수는 "규제가 완전히 없어지면 게임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라며, 현행법 내에서 게임물관리위원회가 합리적으로 규제를 운영할 수 있도록 개선해나가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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