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전후해 국내 주요 은행들의 차기 행장 인선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모범관행’이 적용되는 첫 행장 인사인 만큼, 어떤 요인이 변수로 작용할지 은행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신한금융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경위)는 지난 10일 회의를 열고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자회사 대표이사에 대한 승계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신한금융의 이번 승계 절차 대상에는 연말 임기가 종료되는 정상혁 행장도 포함된다. 정 행장은 지난해 2월 한용구 전 행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한 달 만에 돌연 사임하면서 행장 자리에 올랐다.
정 행장의 지휘 아래 신한은행은 지난해 순이익 3조677억원을 거두며 ‘3조 클럽’에 입성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22.2% 증가한 2조53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하나은행을 제치고 1위 자리를 되찾았다. 갑작스러운 행장 취임에도 실적 성장을 이끈 데다 이번이 첫 임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정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한은행 외에도 차기 행장 후보를 물색해야 하는 은행은 적지 않다. 당장 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행장 임기가 연말 만료되며, 올해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iM뱅크(구 대구은행)와 광주·전북은행 등 지방은행, SH수협은행도 차기 행장 인선을 고민해야 한다. BNK금융그룹의 부산은행과 경남은행도 내년 3월 행장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연내 행장 인선 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은행은 이미 차기 행장 후보 선정과 관련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거나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다. 우선 박종복 현 행장이 지난달 말 용퇴 의사를 밝힌 SC제일은행은 지난 5일부터 이틀간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를 열고 이광희 부행장을 차기 행장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수협은행 또한 최근 차기 행장 공개모집 절차를 진행해 6명의 후보자를 추린 상태다. 수협은행 차기 행장 공모 지원자 중에는 수협은행의 첫 여성 행장인 강신숙 현 행장도 포함됐다.
다른 은행들도 추석 연휴를 지나면 본격적인 행장 인선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 따라 현 행장의 임기만료 3개월 전에는 경영승계절차를 개시해야 하기 때문.
실제 이번 행장 인사는 모범관행이 적용되는 첫 사례인 만큼, 금융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모범관행에서 은행 및 지주사의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위한 30개 원칙을 제시했는데, 이 안에는 최고경영자(CEO) 선임 및 경영승계절차와 관련된 10개 핵심원칙도 포함됐다.
모범관행에 따르면, 은행은 행장 후보군 관리·육성부터 최종 선정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승계계획을 마련·운영해야 하며, 이사회를 통해 연 1회 이상 해당 계획의 적정성을 검토·보완해야 한다.
바람직한 행장 요건에 대해서도 도덕성, 업무전문성, 학력 및 경력, 조직관리 역량, 연령, 회사비전 공유 등 항목별로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하며 면밀하고 공정한 후보 평가·검증을 위해 외부평가기관, 외부전문가, 심층 평판조회, 다면평가 등 평가주체 및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
또한 은행은 외부 후보가 내부 출신에 비해 불리한 경쟁을 하지 않도록 평가 시가와 방법의 공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최근 은행들은 내부 후보에게 부회장직 등을 부여해 육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외부 후보에게도 비상근 직위를 부여하거나 은행의 역량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금감원은 이미 지난 1분기 각 은행으로부터 모범관행 이행계획을 제출받아 검토한 뒤, 행장 자격요건이나 평가체계 다양화 등과 관련해 아직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은행권 지배구조에 대해 정부가 비판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만큼, 은행권이 향후 인사 관련 잡음을 피하려면 모범관행에 명시된 원칙 준수 여부가 중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최근 반복된 금융사고로 인해 은행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만큼, 내부통제가 차기 행장 인선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최근 횡령·배임 및 부실대출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의 경우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행장 연임 여부가 확실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 6월 100억원 규모의 대출금 횡령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최근에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까지 겹쳐 곤란한 상황에 놓인 상태다. 지난 7월 3일 취임 1주년을 조병규 행장은 상반기 1조6735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우리은행의 실적 반등을 이끌고 있지만, 이복현 금감원장이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 만큼 연임 여부를 확신하기 어렵다.
올해 상반기 1조2667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반기 기준 최대 실적을 기록한 이석용 농협은행장 또한 연임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발생한 117억원 규모의 횡령 사고를 포함해 올해 들어 총 네 차례다 횡령·배임사고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가운데는 이 행장 임기 중 이뤄진 사고도 있어 책임론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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