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한 금융사고로 인해 은행권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는 가운데, 각 은행이 운영 중인 준법감시인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은행권에서는 거의 매달 횡령·배임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NH농협은행 의 경우 지난 2월 허위 매매계약서를 통한 109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적발된 데 이어, 지난달 서울 시내 한 영업점에서 부당대출로 인한 117억원 규모의 횡령 사고가 발생하는 등 올해 들어 네 차례나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농협은행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 또한 지난 6월 한 직원이 대출서류를 35회나 위조해 18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KB국민은행도 지난 3~4월 3건의 업무상 배임 사고를 공시했는데, 피해 금액만 총 488억원에 달한다. 사실상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횡령·배임 리스크는 은행권 전반의 문제인 셈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금융권 횡령액은 총 1804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 2018년 57억원, 2019년 85억원으로 100억원을 넘지 않았던 금융권 횡령 규모는 2022년 828억원, 지난해 642억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이 가운데 은행 횡령 규모는 1533억원으로 금융권 전체 횡령액의 85%를 차지해 비중이 가장 컸다.
은행권의 반복된 금융사고를 두고 일각에서는 준법감시인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준법감시인은 은행이 법규와 내부통제 기준을 준수하는지 감시해 윤리경영이 잘 이뤄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각 은행은 준법감시인을 지정하고 해당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조직·인력을 충원해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점검 결과를 공표한다.
실제 주요 시중은행은 100명 이상의 준법감시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190명의 준법감시인 지원 인력을 두고 있어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중 가장 규모가 컸다. 그 뒤는 신한은행 128명, 하나은행 126명, 우리은행 122명, 농협은행 111명 등의 순이었다.
이들 은행의 준법감시부서 인력 수는 전체 임직원 수의 1%를 넘는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내부통제 혁신방안’ 이행 시기를 앞당기면서 각 은행에 오는 2025년 말까지 준법감시인력 비중을 전체 은행 임직원의 0.8% 이상으로 확충하도록 권고했는데, 이미 5대 은행은 해당 기준을 넘는 셈이다.
하지만 준법감시부서에서도 준법감시 전담 직원으로 범위를 좁히면 비중이 훨씬 줄어든다. 국민은행의 경우 준법감시인 지원 인력은 190명이지만 이 가운데 준법추진부 직원은 70명으로 전체 임직원 수의 0.5% 수준이다. 신한은행 또한 준법감시부 직원은 72명으로 전체 임직원의 0.6%에 불과하다. 5대 은행 중 준법감시 전담 인력 비중이 0.8%를 넘는 곳은 없었다.
실제 지난해 윤주경 전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20개 은행의 준법감시인력은 지난해 8월 기준 689명으로 전체 은행 임직원 대비 0.63% 수준이었다. 농협은행의 경우 준법감시부서 인력 비중이 0.33%로 가장 낮았는데, 지난해 말 달성 목표인 0.4%에 미치지 못한 은행은 농협은행이 유일했다.
준법감시인력의 전문성과 독립성도 문제다. 현재 5대 은행 중 준법감시인으로 외부 출신 전문가를 영입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모두 각 은행에서 경력을 쌓아온 내부 인사를 준법감시인으로 선임했다.
은행에서 경력을 시작한 내부 인사가 준법감시인이 되는 경우 준법감시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5대 은행 중 준법감시 업무 관련 전문성을 인정받을만한 인사는 신한은행의 서강대 법학과 출신으로 2017년부터 준법감시부서에서 일해온 이영호 준법감시인 정도다.
내부 인사인 만큼 은행의 독립성을 보장받아 은행의 비윤리적 경영을 견제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실제 5대 은행의 2019~2023년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이 기간 준법감시인의 점검결과는 모두 ‘적정함’으로 공시됐다. 이 기간 은행권에서는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음에도 준법감시인은 은행의 경영활동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 때문에 은행 준법감시인력의 확충 및 독립성·전문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 9일 논평을 내고 농협금융지주 준법감시제도의 문제점으로 ▲독립성 결여되고 감시기능 약한 내부출신 준법감시인 ▲실효성이 부족한 준법감시 ▲경험과 전문성 부족한 준법지원부 등을 지적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이어 “유명무실한 농협금융지주의 준법감시 체계의 실효성을 제고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라며 ▲외부 준법감시인 채용 및 독립성 보장 강화 ▲준법감시 체계의 실효성 제고 및 내부통제 강화 ▲외부 전문가 채용 확대 및 준법감시부 인력 확충 등을 제안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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