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비대면 금융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의 금융소외 현상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고령자를 위한 은행 앱 ‘간편모드’ 출시 등 금융소외 대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디지털 금융소외를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금융거래가 일상화되고 인터넷전문은행이 입지를 넓히면서 온라인 금융 앱 등의 사용률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말 기준 인터넷뱅킹(모바일 포함) 등록고객 수는 2억704만명으로 코로나 전인 2019년 말(1억6391만명) 대비 4313만명(26.3%) 증가했다. 일평균 인터넷뱅킹 이용건수는 1971만건, 이용금액은 76조3388억원으로 같은 기간 각각 55.0%, 56.4% 늘어났다.
비대면 금융거래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대면 금융거래의 비중은 낮아지고 있다. 국내은행의 금융서비스 전달채널(창구, CD·ATM, 텔레뱅킹, 인터넷뱅킹) 중 창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말 기준 5.5%(입출금 및 자금이체 거래건수 기준)로 2019년(7.7%)보다 2.2%포인트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인터넷뱅킹 비중은 60.4%에서 77.7%로 17.3%포인트나 증가했다.
금융의 디지털화는 금융사에게 비용 효율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소비자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개선하는 금융포용의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연령·계층 등에 따른 디지털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금융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익숙한 새로운 환경에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늘어나게 됐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디지털 금융소외 현상에 대한 글로벌 움직임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컴퓨터와 모바일의 발달로 신기술 이용이 어려운 소비자가 금융상품 및 서비스 이용에 제약을 받게 되고, 이는 곧 디지털 디바이드(divide)로 인한 금융소외 현상을 야기하게 된다”라며 “이러한 현상은 고령화, 고비용, 기술 활용의 역량, 제한된 지리적 접근성 등으로 인해 더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3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고령층 등 잠재적 정보취약계층 중 고령층의 디지털 역량이 가장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PC·모바일 등 기기 이용능력을 측정하는 ‘디지털정보화 역량 수준’의 경우 고령층이 55.3%로 가장 낮았으며 그 뒤는 장애인 75.6%, 저소득층 93%, 농어민 71% 등의 순이었다.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얼마나 활용하는지를 측정하는 ‘활용 수준’ 또한 고령층이 73.8%로 농어민 79.2%, 장애인 82.5%, 저소득층 97.4%에 비해 가장 부족했다.
디지털 금융서비스 활용 능력에서도 세대 간 격차는 매우 크다. 일반 국민의 디지털 금융거래 서비스 이용률을 100으로 가정할 때 70대 이상의 이용률은 22.3%에 불과했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다 문제가 생길 때 대처법으로는 “가족의 도움을 요청한다”고 답한 고령층이 71.6%로 가장 많았고, “스스로 해결한다”는 응답은 32.4%로 가장 적었다. 독거노인 가구가 늘어가는 추세를 고려하면 고령층의 디지털 금융소외는 향후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해외 주요국에서도 이미 고령층의 금융소외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상원 의회가 지난 2023년 정부의 디지털 소외 대책 부실을 비판하며 ▲디지털 기술 교육 강화 ▲지역 시설을 통한 디지털 포용 허브 구축 ▲온라인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 오프라인 대안 마련 등의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
미국 또한 현금 사용률이 높은 고령층을 배려해 뉴저지, 메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등 일부 지역에서는 소비자의 현금 지급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또한 미국 재무부 산하의 FinCEN(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은 고령층을 노리는 디지털 금융사기가 점차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지난 2022년 고령층 사기 피해 예방 대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내에 도입된 고령층 디지털 금융소외 대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은행 앱의 고령자 모드(간편모드)다. 직관적인 용어와 간결한 문장 사용, 일관성 있는 구조와 디자인, 충분한 작업 시간과 설명 제공, 한 화면 내 적정 수준의 정보 제공 등 일반모드에 비해 고령자가 사용하기 쉬운 특징을 갖춘 고령자 모드는 지난해 6월 기준 국내 18개 은행에 도입됐다. 금융당국은 증권·카드·보험 등 다른 금융업권의 고령자 모드 도입도 촉진할 방침이다.
다만 고령자 모드만으로 고령층의 디지털 금융소외를 해소하기는 어렵다. 우선 현재 각 은행이 운영 중인 고령자 모드는 일반 모드에 비해 글씨가 조금 커지는 정도로 화면 구성이 뚜렷하게 차별화되지 않는 데다, 은행마다 구성이 달라 고령자가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고령자 모드로 전환하는 기능도 앱 상·하단 구석에 작게 배치돼있는 데다, 명칭도 ‘고령자 모드’가 아닌 ‘간편’, ‘쉬운 홈’ 등으로 돼 있어 직관적으로 알아보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지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글로벌 관점에서 봤을 때 디지털 신기술 활용 측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되고 있으나, 소외계층의 디지털 활용 역량이나 문제 해결 능력 등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라며 “국내에서도 디지털 취약계층의 금융소외를 방지하고자 금융업권 내 간편모드 확대 적용 등 여러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이어 “디지털 취약계층의 경우 다른 생활 서비스에 비해 금융거래 서비스 활용이 저조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신종 금융사기 및 피해도 늘어나고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금융당국은 사용자 중심의 포용적인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되, 기술 투자와 동시에 서비스 접근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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