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용 전기요금이 평균 9.7% 인상된다. 이는 한국전력공사의 200조 원 이상의 부채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대기업 중심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대폭 인상된다.
24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이날부터 대용량 고객 대상인 산업용(을) 전기요금을 1kWh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 전기요금은 5.2%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주택용 전기요금과 상점 등에서 쓰이는 일반용 전기요금은 동결됐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에도 주택용과 일반용 등을 제외한 산업용 전기요금만 평균 4.9% 인상한 바 있다.
한전은 국제 연료가격 폭등 등의 영향으로 2022년 이후 6차례 요금 인상과 고강도 자구노력에도 2021∼2024년 상반기 누적적자는 41조 원(연결), 올해 상반기 부채는 203조 원(연결)에 이르러 재무부담이 가중됐다.
이에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미래 첨단산업 기반 조성을 위한 전력망 확충과 정전·고장 예방을 위한 필수 전력설비 유지·보수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또 효율적 에너지소비 유도와 안정적 전력수급을 위해서도 요금조정을 통한 가격신호 기능 회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요국과 대비해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1㎿h(메가와트시)당 122.1달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과 비교하면 26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저렴한 나라는 이스라엘(117.6달러), 캐나다(108달러), 스웨덴(95달러), 핀란드(84.6달러), 노르웨이(82.5달러), 미국(80.5달러) 등이다. 주로 원유, 천연가스 부국들이다. 우리나라와 산업 구조가 비슷한 일본 역시 1㎿h당 177.9달러로 우리나라보다 비쌌다.
산업용 전기 고객은 전체의 2%가 채 안되지만 사용량 비중은 절반이 넘는 상황이다. 대기업들은 연간 약 1조 2000억 원의 추가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한전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연간 약 4조 7000억 원의 매출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한전은 누적적자 해소와 전력망 투자재원 마련을 위해 전기요금을 단계적으로 정상화 중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요금조정을 기반으로 자구노력을 철저히 이행해 경영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전력망 건설에 매진해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이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안 발표에 대해 묻자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한 부분은 서민 경제가 어렵다 보니 부득이한, 고육지책의 하나로 마련한 방안”이라며 “올해 더 이상 추가 인상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한편, 재계는 정부가 발표한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 인상안이 기업 활동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전력 사용 상위 20개 기업의 연간 전기료는 지난해 12조 4530억 원에서 13조 8796억 원으로 1조 4266억 원 늘어난다. 이에 이번 전기료 인상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신음하는 정유, 석유화학, 철강, 디스플레이, 반도체 기업 등에 직격탄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제단체들도 일제히 입장문을 발표하며 정부 인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3일 논평을 통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 등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돼 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제조 원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연속해서 인상하는 것은 성장의 원천인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상 요인은 반영하되 산업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전기 소비자들이 비용을 함께 분담하고 에너지 효율화에 적극 동참하게 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향후 전기요금 조정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후속 대책도 마련되길 바란다”며 “에너지 수급 안정의 국가 경제적 중요성을 고려해 국회에서도 국가전력망확충법안, 해상풍력발전법안, 방폐장특별법안 등이 조속히 처리되도록 노력해 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이상호 경제산업본부장 명의 코멘트를 내고 “국내 산업계는 고물가·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에 놓였다"며 "전기요금 차등 인상으로 경영 활동 위축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이번 전기요금 차등 인상이 한전의 부채 부담 완화, 서민 경제의 어려움 등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산업계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 전반의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고 소비자에 대한 가격 신호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원가주의에 기반한 전기요금 결정 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며 “'요금 인상'이라는 네거티브 방식이 아닌 전기를 아끼면 인센티브를 주는 포지티브 방식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입장문을 내고 “그동안 중소기업계가 요구해온 산업용 요금 교차보조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며 “주택용과 일반용은 동결하고,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된 점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요금 인상은 에너지의 79%를 전력에 의존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특히 뿌리 중소기업들은 전기요금이 제조원가의 3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심각한 경영 악화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중기중앙회는 “계절·시간대별 요금 조정 등을 반영한 뿌리 중소기업 대상 요금 개편과 납품 대금 연동제 적용 범위에 전기료를 포함하는 법안의 조속한 입법 추진 등 중소기업의 중장기 에너지 전환을 위한 지원책을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24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반도체를 경쟁하는 대만과 비교해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굉장히 저렴하다”면서 “우리나라가 그만큼 산업계에 베네핏(혜택)을 준 것이고, 이제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으면서 RE100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 반도체를 다 생산해도 (RE100 이슈로) 애플 등 글로벌 기업에서는 쓰지도 못할 것”이라면서 “이제는 단순히 한전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 및 비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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