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를 통해 BMI 기준을 충족하지 않아도 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무분별한 처방과 관련해 의약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4일 대형 인터넷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앱에서 몸무게나 키를 묻지 않고 간단한 통화 후 위고비를 처방받았다는 후기가 연일 올라오고 있다. 또 다이어트 커뮤니티와 카페 등에서는 위고비 구매가 가능한 '성지 약국'과 직구 사이트 등의 공유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위고비는 BMI(체질량지수) 30 이상이거나 BMI가 27 이상이면서 당뇨병·고혈압 등 대사질환과 같은 동반 질환이 있는 과체중 또는 비만 환자 등에 처방하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전문의약품이다. 하지만 체중 감량을 원하는 사람이 늘면서 BMI 기준이 되지 않는 소비자들도 단순히 '다이어트용'으로 위고비를 처방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기자도 직접 비대면 앱을 이용해 위고비 처방을 받아보았다. 이날 오전 한 비대면 플랫폼앱에서 '다이어트'를 클릭하자 처방 종류에 위고비/오짐펙 등의 화면이 등장했다. 1펜 처방 버튼을 누르자 의사 목록이 나타났다.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피부과등 다양한 진료과의 의사가 위고비 처방이 가능했고, 진료비는 4000원에서부터 1만원 내외였다.
진료 예약을 위해 키와 몸무게, BMI를 작성했다. 의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의사는 투여 용량과, 투약 분량을 묻고 진료를 마쳤다. BMI 30이 안 됐지만 의사는 “위고비는 총 3가지가 있다. 0.25, 처음 쓸 때는 0.25로 쓰는 게 맞고, 1펜당 한 당 정도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얼마나 처방할까요”라고 물었다. 기자가 한 달치를 부탁하니 “0.25 이렇게 해드릴께요”라고 처방전을 보냈다.
처방전을 받기 까지 약 35초 정도 걸렸다. 그리고 약국 찾기를 통해 10초 만에 간편접수가 가능했다. 미리 약국 찾기를 통해 위고비 가격대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처방전은 3~7일간 유효하다.
이는 비대면 진료의 악용 사례로 지적되며, 위고비 오남용 시 자살 위험, 두통, 구토, 설사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국정감사에서도 이러한 위고의 비대면진료 남용 사례를 들어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지난 23일 "지난 식약처 국정감사 당시 위고비 출시를 앞두고 온라인 불법 유통이나 과대광고, 부적절한 비대면 진료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며 "하지만 예상했던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예를 들면 사후피임약의 경우 논의를 거쳐 비대면 진료에서 제외된 선례가 있다"며 "비만관리 역시 생활습관부터 시작되고 약물 투여는 여러 검증된 방식을 거친 후에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비만치료제 과대광고를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최근 40개소에 보냈다"며 "비만 관련해서 비대면 진료 포함 여부는 복지부의 소관이기 때문에 추가 논의를 진행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닥터나우 어플에서 다이어트 주사 처방을 요청한 후 주민등록번호와 간단한 문진 내용을 입력하면, 전화로 연결돼 짧은 진료 끝에 처방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의원실에서 직접 확인했다"며 "진료 시작부터 처방까지 21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비대면 진료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백 의원은 이어 "식약처가 위고비의 해외직구를 차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우선 국내에서의 오남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당장 위고비를 비대면으로 처방받을 수 없는 약물로 지정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즉각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국내 의약계에서도 위고비의 비대면 처방불가 의약품 지정 등 보건당국의 적극적인 관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비만학회가 GLP-1 유사체 허가 이후 국내 출시 첫 주 만에 오남용 우려가 현실화됐다며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비만학회는 23일 성명을 통해 "비만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시점에 효과적인 약물 중 하나로 알려진 위고비가 출시된 데 환영하지만, 출시되자마자 미용 목적으로 유통·거래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오남용 우려가 현실화했다"고 밝혔다.
학회는 "위고비가 비만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약물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라며 "치료 대상자는 체질량지수 기준으로 명확히 정해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위고비와 같은 인크레틴 기반 약물의 오남용을 줄이고, 국민이 안전하게 처방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며 "의사들과 국민에게도 이 약물의 적응증을 지켜서 치료 대상자인 비만 환자만이 사용하도록 촉구한다"고 말했다.
특히 위고비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언급하며, 의사의 지도와 모니터링 하에 사용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학회는 "위고비는 뛰어난 체중감량 효과를 보이지만 구토, 변비, 설사, 복부 팽만감이나 흡인성 폐렴, 췌장염 등 다양한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며 "비만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 목적으로 사용 시 치료 효과보다는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약사회는 위고비를 비대면 처방이 불가한 의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고비 오남용 예방을 위해 비아그라, 사후피임약과 같이 대면진료를 받은 후 처방이 가능하도록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민필기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이전에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통해서 사후피임약 처방이 가능해 오남용이 문제가 됐다"며 "사후피임약은 지난해 12월부터 비대면으로 처방받을 수 없는 약물로 지정됐다"라고 말했다.
민 부회장은 이어 "식약처에서 온라인 판매·광고 행위를 한 달간 집중 모니터링한다고 했지만 모니터링만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현재 약사회에서도 불법 유통, 허위 처방 등이 있는지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복지부 등과 연계해 오남용 예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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