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가 인하됐지만 주요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오히려 확대되면서 금융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은행의 ‘이자장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실패가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일 임원회의에서 “은행 예대금리차는 연초보다는 낮은 수준이나 최근 몇 달 동안 확대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라며 “기준금리 인하로 경제주체가 금리부담 경감효과를 체감해야 하는 시점에서 예대금리차 확대로 희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하반기 들어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예대금리차(신규취급액 기준)는 지난 1월 1.01%포인트에서 7월 0.65%포인트까지 줄어들었으나, 이후 다시 확대되기 시작해 9월 0.83%포인트로 늘어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컷’(정책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것은 지난 9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것은 지난 10월이다. 하지만 시장금리는 이미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기대를 선반영해 하반기 들어 하락하고 있었다. 금리인하기에는 통상 대출금리가 먼저 하락하면서 예대금리차가 축소되는 만큼, 시장금리 하락기에 예대금리차가 오히려 확대되는 현상은 이례적이다.
예대금리차가 확대된 것은 예금금리는 인하된 반면 대출금리는 오히려 상승했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를 단순 평균하면 지난 7월 3.43%에서 9월 3.39%로 0.03%포인트 하락한 반면, 가계 예대금리차(정책성서민금융 제외)는 3.86%에서 4.13%로 0.27%포인트가 급등했다. 대출금리가 예금금리 인하 폭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오른 셈이다.
금리하락으로 이자마진이 축소되며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됐던 은행권도 뜻밖의 예대마진 확대에 힘입어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고 있다. 실제 5대 은행은 올해 3분기까지 31조4387억원의 이자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고금리 시기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2% 증가한 것이다. 당장 3분기에 거둔 이자이익만 10조3755억원으로, 시장금리가 내려가고 있음에도 은행의 이자수익은 오히려 불어났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은행의 ‘이자장사’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시장금리 하락에도 대출금리가 상승한 것은 가계부채 관리를 요청한 금융당국의 강력한 개입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들어 부동산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고 대출금리가 하락하면서 가계부채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가계대출을 억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에 주요 은행이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인상하면서 예대금리차가 확대된 것.
문제는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에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시행해 가계대출을 관리할 계획이었으나 지난 6월, 돌연 시행 일정을 7월에서 9월로 연기했다. 이 때문에 규제 전 대출을 받으려는 막차 수요가 몰리면서 7~8월 가계대출 증가폭이 크게 확대됐다.
금융당국의 요청에 따라 대출수요 관리를 위해 대출금리를 올린 은행에 대해서는 “손쉬운 방법만 찾는다”는 질책이 돌아왔다. 이 원장은 지난 8월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게 아니다”라며 금리인상이라는 쉬운 방법으로 가계대출을 관리하려는 은행을 질타했다. 이에 은행이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출수요 관리에 나서자, 이번에는 실수요자를 알아서 배려하라는 모호한 메시지가 돌아왔다.
결국 가계부채 정책 혼선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이 원장은 9월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해 좀 더 세밀하게 메시지를 내지 못했다”며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국토교통부가 가계대출 폭증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하려했다가 실수요자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디딤돌 대출은 최근 가계대출 증가분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DSR 등의 대출규제에서도 벗어나 있지만, 정부는 이와 관련해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연준과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여파로 예대금리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중은행이 앞다퉈 예금금리를 인하하고 있는 반면, 가계부채 리스크로 인해 대출금리를 내리기는 여전히 어렵기 때문.
게다가 대출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금만 늘린다 해도 은행 입장에서는 이자비용만 불어나게 되는 셈이기 때문에, 은행들이 예금 유치를 위해 금리인상 경쟁에 나설 이유도 당장은 없다.
한편, 이복현 금감원장은 “향후 개별 은행별 유동성 상황, 여수신 금리 추이 등을 분석해 금리 반영 경로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라며 “특히, 대내외 금융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수신 및 은행채 발행 수요가 증가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지체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달라”고 당부했다. 가계대출 정책 혼선으로 확대된 예대금리차가 다시 축소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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