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각) 치러진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또 동시에 치러진 미국의 제119대 연방의회 선출 선거에서 하원과 상원에서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게 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마주할 것으로 보인다.
7일 정부당국에 따르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늘 오전 7시59분부터 약 12분 동안 트럼프 당선인과 윤 대통령의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면서 “조만간 이른 시일 내에 날짜와 장소를 정해 회동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미국 조선업에 대한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간 좋은 협력 관계를 이어가기를 기대한다”며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두루 잘 듣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또 “미국의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면서 앞으로 양국이 구체적으로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도 “그동안 보여주신 강력한 리더십 아래 한·미 동맹과 미국의 미래는 더욱 밝게 빛날 것”이라고 축하 인사를 전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한국 조선업 협력 발언으로 국내 주식시장도 반응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12분 기준 HD현대중공업 15.1%, HD한국조선해양 6.0%, 삼성중공업 7.0%, 한화오션 14.2%, HD현대미포 6.2% 등 이날 주식시장에서 조선주들이 일제히 급등하고 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정책과 방산협력 강화 가능성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보호무역주의는 해상 물동량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원은 “주요 선진국들과 국제해사기구(IMO)의 노력으로 조선해운분야에도 강화된 친환경 정책들이 도입되면서 한국조선사들의 수혜가 이어졌다”며 “LNG나 메탄올, 암모니아 등을 병행해 사용할 수 있는 이중연료엔진과 연비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선형디자인 및 각종 보조장치 등에서 한국이 중국을 압도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본인이 당선될 경우 파리기후협약을 재탈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정 연구원은 “환경정책이 후퇴할 경우 한국의 이러한 경쟁우위가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2.0 시대의 주요 변화 중 하나는 관세 정책 강화이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국가에 대해 최대 20%의 보편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고, 중국 상품들에 대해서는 60%의 관세 도입을 예고해 한국 수출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불구하고, 수출 비용 증가와 공급망 재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미 수출 비중이 큰 제조업, 특히 자동차, 철강업체들이 대표적이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현재보다 불편한 시장 환경에서 경쟁해야 할 것”이라며 “가장 큰 변수는 거시경제 지표 및 정책의 전환, 그 중에서도 환율과 관세가 우선이고, 그 다음은 자동차 산업 정책의 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의 공약과 발언들이 전부 현실화된다면, 한국 자동차 업체들에게 전반적으로 중립 이하의 영향이 예상된다”며 “다만, 한국 자동차 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크게 높아져 있고 시장 대응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영향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친환경 산업이 제약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간 공약을 통해 재생에너지 산업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이는 한국의 태양광과 배터리 기업에 부정적일 수 있다. 반면 중국 견제가 강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반도체 및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법)도 수정될 가능성이 있어 배터리와 반도체 기업들은 투자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칩스법에 따라 미국 정부에서 각각 64억 달러(약 8조7600억 원)와 4억5000만 달러(약 6200억 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다.
이와 관련 현대경제연구원은 '트럼프 노믹스 2.0과 한국 경제' 보고서를 통해 “IRA 및 CHIPS에 의해 수혜를 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 법률의 적용을 막기 위해서는 의회에서 개정되거나 폐지될 수 있는데, 의회의 다수당이 공화당일지라도 당내 일정 부분 동 법률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어 법의 개정이나 폐지에 다소의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어 “다만, 법률에 근거한 시행 과정에서 의도적 지연이나 외국 기업의 보조금 지급 자격에 대한 엄격한 적용 등을 통해 법률의 실질적 무효화를 도모할 가능성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 보고서는 “미국의 글로벌 위상과 직결되는 우주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 확대와 민간 기업의 협력 강화가 예상된다”며 “국민들의 체감 경기에 많은 영향을 주는 주택 산업에 대해서는 경기 진작을 위한 인위적인 부양책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편,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한국 수출이 최대 450억 달러(약 60조원)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로 인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24 미국 대선: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 정책으로 한국의 전체 수출액은 약 222억~448억 달러(약 31조~62조원)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수요에 대한 대응이나 수출 전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실질 GDP는 약 0.29~0.67%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이 관세 정책을 넘어 중국 견제를 위한 공급망 재편을 본격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공급망 블록화를 추진할 경우 한국의 소비와 투자를 포함한 후생(모든 소비와 투자의 합)은 -1.37%에서 최대 0.30%까지 변동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미·중 갈등이 심화되어 한국이 공급망 블록화에 참여한다면, 한국 경제 후생이 최대 1.37%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반대로, 공급망 블록화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면 후생은 0.10%에서 0.30% 증가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미·중 간 공급망 재편이 특정 산업에서의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디리스킹'을 넘어, 전체 산업에서 교역 관계를 약화하는 '디커플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에 “글로벌 관세정책이나 공급망 블록화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핵심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공급망 다변화, 제3국 수출시장 개척 및 내수 확대 방안 등 민관협력 로드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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