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가상자산 시장이 축제 분위기를 띠고 있지만, 대부분의 거래량이 대형 거래소에 몰려 중소형사는 소외되고 있다. 업비트·빗썸 등 양대 거래소가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해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반면, 시장 경쟁의 결과에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지난 5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상자산 시장은 전반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 가상자산 정보플랫폼 ‘코인게코’에 따르면, 대선 직전 6만700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8일 오전 한때 7만6000달러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8일 낮 12시 현재 비트코인은 24시간 전보다 0.7% 하락한 7만583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이 강세로 돌아서면서 거래량도 폭증하고 있다. 코인게코에 따르면,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24시간 거래대금은 지난 6일 8조원을 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업비트의 하루 거래량은 지난 3월 이후 2조원 수준에 머물렀으나, 미국 대선 효과로 4배나 폭증한 것. 빗썸·코인원·코빗 등 다른 거래소 또한 거래량이 미국 대선일을 전후해 상당히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대선으로 인한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의 수혜를 양대 거래소가 독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업비트와 빗썸, 양대 거래소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상태다.
코인게코에 따르면, 국내 5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의 24시간 거래량은 8일 낮 12시 기준 7조601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업비트(5조1580억원)와 빗썸(2조2818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67.9%, 30.0%로, 두 거래소의 점유율을 더하면 97.9%에 달한다. 중소형 거래소 3곳이 나머지 2.1%의 파이를 나눠가지게 되는 셈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 업비트의 점유율은 지난해 90% 수준에서 현재 60~70% 수준으로 하락했지만, 업비트가 내준 파이를 빗썸이 독식하면서 가상자산 시장은 사실상 과점 상태에 놓이게 됐다.
가상자산 시장의 독과점 문제는 해외에서도 이미 논의되고 있다. 유럽증권시장청(ESMA)은 지난 4월 가상자산 거래의 약 90%가 단 10개의 거래소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전체 거래의 절반이 바이낸스에 집중돼있다고 밝힌 바 있다. ESMA는 “소수의 거래소에 거래가 집중되면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거래 실패 등의 오류가 발생하면 가상자산 생태계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과점 문제가 논의된 바 있다. 지난달 10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업비트의 거래량·예수금·매출액·수수료 등이 업계 70%를 웃돌고 있다”라며 “공정거래법 상 독과점 상태인데도 금융당국이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 또한 지난달 21일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대상 국정감사에서 가상자산 시장의 독점 구조에 대한 공정위 조사·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및 공정위도 정치권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는 모양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가상자산 시장 독과점 문제에 대해 지적받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라며 “가상자산위원회를 통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또한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했는지 살펴보겠다”며 독과점 문제를 조사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일각에서는 수수료 인상 등의 폐해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시장 경쟁을 통해 우위에 선 사업자에 대해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나온다.
앞서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3월 ‘건전한 시장 조성을 위한 디지털자산 컨퍼런스’에서 “특정 기업의 높은 점유율은 경쟁 사업자들에게 우월한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토대로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받은 결과”라며 “정당한 경쟁을 통해 취득한 것이라면 이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권장할 사안이지 지탄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6일 열린 제1차 가상자산위원회 회의에서 “블록체인 생태계 육성 방안, 시장 독과점 문제 등 산업 정책적 이슈를 포함해 스테이블코인, 국경 간 가상자산 거래 등 범정부 협업과제도 폭넓게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제 막 출범한 가상자산위가 반복된 독과점 논란에 대해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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