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기 집권을 앞두 한국 재계가 트럼프 측과의 인맥을 강화하고 있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과 인맥이 있는 주요 인사로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주목받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 외에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여러 인사들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랜 지인인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창립자와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퓰너 회장은 지난 2017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선임 고문으로 대선 캠프에서 외교·안보 분야 자문을 맡았다.
퓰너 회장은 1973년 미국 공화당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The Heritage Foundation) 설립에 참여한 후 2013년까지 회장을 역임했다. 헤리티지재단은 1981년 이후 매번 대통령 집권 프로젝트 보고서를 내고 있다. 이 보고서의 권고사항 가운데 60%가 실제 공화당계 정권의 정책으로 채택됐을 만큼 향후 정책의 가늠자로 여겨진다.
퓰너 회장은 특히 헤리티지재단 내에 아시아연구센터를 창립한 미국 내 대표적인 아시아 전문가이자,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 깊은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친한파'로 알려져 있다.
김승연 회장과 에드윈 퓰너 회장의 돈독한 친분은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약 40여 년간 이어지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기회가 닿을 때 마다 한·미간 현안은 물론 국제 경제 전반에 대해 서로간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눠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연을 바탕으로 김 회장은 국내 재계 인사 중에서는 드물게 지난 2017년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퓰너 회장은 지난 2023년 한화그룹 지주회사 ㈜한화 사외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사회 일원으로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김승연 회장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과도 소통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또 한화그룹의 방산3사의 성장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 우선주의 강화를 예고한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될 확률이 크고, 이에 따라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국방비 지출을 늘릴 유인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글로벌 방산업은 재래무기보다 첨단방위산업이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 한화시스템 등이 한화그룹 대표 방산주로 꼽힌다. 한화오션의 경우 지난 7월 22일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히면서 직전거래일 대비 주가상승률이 장중 한때 3.5%까지 오르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도 트럼프 당선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 정관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2019년 국내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바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당해 5월에 루이지애나주에서 열린 롯데케미칼 석유화학공장 준공식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 롯데의 대미 투자를 크게 반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억 달러(약 4조3316억 원)에 달하는 투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대미 투자 중 하나이며, 한국 기업이 미국의 화학 공장에 투자한 것으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평가했다.
롯데케미칼의 루이지애나 공장은 석유화학산업의 가장 기초품목인 에틸렌을 연간 100만톤(t) 생산할 수 있는 초대형 설비를 갖췄다. 총사업비는 31억 달러로, 롯데는 지분의 88%를 투자했다.
롯데는 1991년 롯데상사가 처음 미국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알라바마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생산기지, 롯데뉴욕팰리스호텔, 괌 공항 롯데면세점 등이 진출해 있다. 롯데케미칼, 롯데면세점, 롯데호텔, 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상사 등 5개사가 진출해 있으며, 총 투자규모가 4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매년 사업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주요 기업 총수들이 대부분 그와 직접 만났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 CJ 등 주요 대기업을 언급하며 이들의 대미 투자에 감사를 표했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해, 향후 한국 재계의 대미 네트워크 확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풍산그룹 류진 회장 역시 미 공화당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온 대표적인 인물로, 미국 내 다양한 정계와 학계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류 회장은 트럼프 측근들과도 네트워크가 있어 그의 역할이 주목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트럼프 주니어와의 친분으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신세계는 지난 2018년 미국 법인 설립과 현지 슈퍼마켓 체인 인수를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해 55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와의 관계를 통해 한국 재벌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을 가능성도 있지만, 미중 관계 악화와 같은 외교적 변수도 함께 고려해야 할 요소로 보인다. 이에 한미 경제협력은 안보협력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기에 다양한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세종연구소는 11일 ‘세종포커스-트럼프 2기 출범, 다가올 외교안보 과제 10문 10답’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당선인은 특히 대외무역 관련해서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입장이며 관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IRA에 기반해서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그런데 IRA에 기반한 보조금 혜택이 사라지면 우리 기업들에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된다”며 “한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에 10% 내외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 감소가 예상된다. 연간 400억불이 넘는 대미 흑자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견제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윤석열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의 통화에서 언급된 조선 분야의 협력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보고서를 작성한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은 통화에서 미군 함정 유지보수운영(MRO) 분야의 지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의 방산 역량은 동맹국인 미국에도 자산이 될 수 있기에 방산과 경제안보 분야의 협력을 확장해야 한다”며 “대미 무역 흑자의 폭을 줄이기 위해 미국산 원유 수입을 확대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셰일 가스를 비롯하여 에너지 산업의 부흥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의 업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성과사업을 발굴할 수 있다면, 미 행정부의 우호적 조치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한국 상품에 대한 관세를 줄이도록 노력하며, 미국 의회와 협력하여 IRA와 관련된 한국 기업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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