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에 대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400조원의 퇴직연금 시장을 두고 국민연금공단(NPS)을 포함한 전문 운용조직이 참여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금융투자업계에선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퇴직연금제도의 목적은 퇴직 후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행 퇴직연금제도는 개별 가입자가 직접 금융기관과 적립금 운용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는 기존 ‘계약형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로, 주로 안정성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수익률이 터무니없이 낮아 근로자의 노후를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07%로 예금 금리 수준이며, 이는 최근 3년간 2.5%에서 5.1%에 달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금융권은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분위기다. 은행들은 지난달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와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에 따른 우려사항을 전달했고, 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금융투자협회도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사업자 참여 반대 견해를 담은 성명서를 냈다. 제도가 바뀌면 현재 쌓아놓은 수탁금을 통합기금 운용기구에 넘긴 후 입찰 등을 통해 이를 다시 수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퇴직연금을 기금화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운용 방식 등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의 수익률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업계관계자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수령방식이나 장·단기 운용 방식이 다르다. 국민연금은 법정 연령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다 보니 초장기 투자가 가능하지만, 퇴직연금의 투자 기간 등은 모두 근로자 개인이 정한다”라면서 “완전히 다른 제도라 할 수 있는데, 수익률을 나란히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의 운용기구로 거론되는 것에 ‘연금사회주의’를 이야기하며 정부기관이 퇴직연금에 참여해 사적 연금시장에 경쟁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연금사회주의란 국가가 국민들의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공적 연금 제도를 운영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반면에 기금형 퇴직연금의 도입은 세계적 추세라며 전면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재현 상명대 교수는 “기금형은 세계적으로 퇴직연금의 일반적인 지배구조인데 우리 퇴직연금제도에는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라며 기금형 퇴직연금의 전면 도입을 주장한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은 엄격하고 투명한 투자 원칙에 따라 투자 전문가에 의해 글로벌 포트폴리오에 의해 굴려지지만, 퇴직연금은 400조 원의 적립금이 40개 퇴직연금 사업자로 쪼개져 운용되고, 중요한 투자 결정은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100만 명의 사용자(DB)와 400만 명의 가입 근로자(DC)가 개별적으로 내린다.”라며 “이러니 90%가 수익률은 낮지만 안전한 원리금보장형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라고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어 “2000년 스웨덴 정부가 공적연금 보험료의 일부를 국민이 직접 운용하는 부분 민영화를 단행하며 운용 플랫폼으로 AP7이라는 기금을 세웠고, 보험회사 등의 민영기금과 경쟁하게 해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사용자가 퇴직연금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여 운영하는 퇴직연금제도 운영방법(계약형) 외에 추가로 사용자가 수탁법인을 설립하고 그 수탁법인과 계약의 방법으로 신탁을 설정하여 퇴직연금제도를 운영하는 방법(기금형)을 새롭게 도입했다.
퇴직연금 기금운용을 담당하는 수탁법인의 경우, 연간 적립금 규모가 3천억 원 이상이거나 가입자 수가 3만 명 이상일 경우로 설립요건을 한정하여 난립을 방지하고, 비영리재단법인으로 하도록 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설립하도록 하였다. 또한 사용자 및 가입자의 이익을 위한 충실의무, 운용계획서에 따른 적립금 운용 의무 등 근로자의 수급권 보장을 위한 의무도 부여하였다.
한정애 의원실은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기금형 퇴직연금은 사실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2019년부터 쭉 관련 법안을 내왔었다.”라며 “그럴 때마다 금융권에선 반대의 목소리가 나와 금융권에 민간기금화에 대해 제안도 했지만, 그것도 반대했었다”라고 말하며 대안 없는 반대를 주장하는 금융권을 지적했다.
이어 “기금 간 경쟁을 활발히 해 수년간 최대 8%대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내는 호주의 사례를 봤을 때도 기금형 퇴직연금의 도입은 이루어져야 한다”라며 “개인의 정보의 비대칭이 심하고, 금융사의 경우 수익률과 상관없이 위탁금액에 대해 중간 수수료를 받아 가는 지금이야말로 가입자와 금융기관 간의 불균형이 심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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