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사들이 의료자문을 통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과잉진료에 따른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는 해명이 나오는 반면, 역대급 실적을 냈음에도 정작 금융소비자 보호는 뒷전이라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19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17개 손보사가 의료자문을 통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비율(부지급률)은 올해 상반기 기준 9.08%로 전년 동기(7.75%) 대비 1.33%포인트 상승했다. 의료자문을 통해 보험금 지급이 거부된 사례는 총 2889건으로 같은 기간 726건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보험금 청구 건수가 많고 그만큼 의료자문을 실시하는 경우도 빈번한 대형 손보사도 중소형사까지 모두 더해서 산출한 업계 평균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부지급률을 보이고 있다. 실제 삼성화재·DB손보·메리츠화재·KB손보·현대해상 등 ‘빅5’로 불리는 대형 손보사들은 상반기 기준 보험금 청구건수가 500~900만건, 의료자문 실시건수는 4000~8000건에 달한다.
의료자문 실시건수가 세자릿수 수준인 중소형사에 비해 대형사의 부지급률이 일반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빅5’ 중 업계 평균보다 의료자문을 통한 부지급률이 낮은 곳은 삼성화재 한 곳뿐이었다. 실제 삼성화재는 올해 8307건의 의료자문을 실시해 이 가운데 153건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의료자문을 통한 보험금 부지급률은 1.84%로, 의료자문을 아예 실시하지 않은 신한EZ손보와 카카오페이손보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나머지 4개 대형 손보사의 의료자문을 통한 보험금 부지급률은 업계 평균과 비슷하거나 높았다. KB손보의 경우 12.81%의 부지급률(의료자문 4162건 중 533건 지급 거부)을 기록해 ‘빅5’ 중 가장 높은 부지급률을 기록했다. 그 뒤는 메리츠화재 10.73%, 현대해상 10.21%, DB손보 8.93% 등의 순이었다.
손보사들은 과잉진료로 인한 보험금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자문을 통한 엄격한 심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손보사 지급보험금 11조9000억원 중 10대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31%에 달했다.
보험사기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1조1164억원, 적발 인원은 10만9522명으로 전년 대비 각각 346억원(3.2%), 6843명(6.7%) 증가했다. 보험사기와 비급여 과잉진료 위험이 계속 커지고 있는 만큼 의료자문과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손보사들의 입장이다.
실제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손보사의 의료자문 실시건수와 이를 통한 부지급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실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말과 비교하면 국내 손보사의 의료자문 실시건수는 2만6580건에서 3만1819건으로 5년간 19.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의료자문을 통한 부지급 건수는 859건에서 2889건으로 236.3%나 폭증했으며, 부지급률 또한 3.23%에서 9.08%로 5.85%포인트나 늘어났다.
손보사별로 보면, 메리츠화재의 상승폭이 눈에 띈다. 메리츠화재가 의료자문을 통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비율은 2019년 말 기준 0.83%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10.73%로 5년간 9.90%포인트나 늘어났다. 그 뒤는 KB손보 8.15%포인트, 현대해상 7.19%포인트, DB손보 5.37%포인트 등의 순이었다. 삼성화재는 같은 기간 1.09%포인트 늘어나 가장 상승폭이 작았다.
이처럼 의료자문을 통한 보험금 지급 거부 사례가 늘어나자, 금융소비자들도 손보사가 시행하는 의료자문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의료자문을 맡은 손해사정사가 손보사의 자회사인 경우가 많아 일방적으로 손보사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법무법인 비츠로의 장휘일 변호사는 지난해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어떤 의사가 자문검토를 했는지 불분명하고, (관련 자료에는) 병원명만 기재하고 의사 도장도 없다”라며 “축구 한일전을 하는데 심판이 일본 심판인 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보험연구원 또한 지난해 발간한 ‘의료자문제도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의료자문제도 마련을 위해서는 우선 독립적인 자문의 인력풀(Pool) 확보가 필요하다”라며 “민영건강보험도 독립적인 민간기구나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 개입하여 자문절차를 마련하고 의료진의 참여를 독려해 독립적인 자문의 선정이 가능한 환경 및 제도적 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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