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발달장애인들이 오케스트라를 만든다고 할 때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그리고 쉽게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는 어렵겠지요.’
하트-하트재단은 2006년 음악에 관심 있는 발달장애인 청소년 여덟명을 모아 ‘하트하트(Heart to Heart)오케스트라’를 만들었습니다. 재단은 세상과 등지고 살다시피 하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음악을 통해 세상과 잇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마음과 마음(Heart to Heart)을 잇고, 단절에서 소통으로 나가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5분 연습하는 것을 목표로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아이의 엄마는 수영장 관리 보조 일을 하며 받는 월급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빠듯한 형편이지만, 아들의 악기 연습을 위해 모든 삶을 바쳤습니다. 또 어떤 아이의 엄마는 중증 장애가 있는 아이가 첼로로 ‘반짝반짝 작은 별’을 연주할 수만 있다면 10년이 걸려도 도전하겠다며 아이와 함께 악보 읽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또 어떤 아이의 부모는 기초 생활 수급자 가정에서 폐휴지를 수집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아이가 악기를 배우도록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넘어지고 다치고, 상처받으면서도 일어서고 또 일어섰습니다.
선생님이 10여 년 동안 눈 마주치기를 연습시켜도 안 되던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단은 아이가 연습하는 동안 부모가 다리를 쭉 뻗고 쉬라고 대기실을 온돌방으로 만들었지만, 어머니들은 방에서 앉아 쉬지 못했습니다.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연습실 구석에 서서 자녀가 놓친 부분, 지휘자의 주의 사항을 들으며 함께 배웠습니다. 그렇게 연습한 아이들은 음대에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하면 앙상블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제19회 정기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오프닝 무대 ‘트롬본과 피아노를 위한 카바티나’(트롬본 전진)를 시작으로,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가 르드밀라’ 서곡,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 국회의원이 협연한 ‘헝가리안 판타지’, 모차르트의 ‘플루트 협주곡 1번 1악장’(플루트 조성현)을 연주했습니다. 특히 드보르작 ‘교향곡 8번’ 전곡 연주에 도전해 40분에 이르는 연주를 마쳤을 때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꽉 채운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감동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보였습니다. 이들이 무대 뒤에서 흘린 눈물과 애환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사람들이 아니면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발달장애 오케스트라 단원 37명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음악 스타들이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지난 9월 초 파리 패럴림픽이 열리는 동안 파리와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네 차례 연주회를 전석 매진시키며 ‘K-클래식’의 매력을 뽐냈습니다. 연주는 브뤼셀에서 이틀, 패럴림픽이 진행 중인 프랑스 파리에서 이틀 열렸습니다. 첫 연주회는 세계 3대 음악콩쿠르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가 열리는 브뤼셀 왕립음악원에서 펼쳐졌습니다. 파리에서는 120년 전통의 살 가보(salle Gaveau) 콘서트홀 무대에서 연주했습니다. 지휘는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지휘과 출신으로 2016년부터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으며, 과천시향 상임지휘자인 안두현이 맡았습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그동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정기연주회와 미국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해 일본, 중국, 캐나다 등 해외 공연을 펼쳐왔습니다. 이탈리아, 홍콩 등에서도 연주회 초청을 받은 상태입니다.
하트-하트재단 오지철 회장(전 문체부 차관)은 “드보르작 8번 교향곡 전 악장 연주을 끝낸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앞으로 더욱 뛰어난 연주를 통해 많은 분에게 희망과 용기를 드리고 ‘발달장애 인식개선’과 ‘예술을 통한 장애인 복지증진’이라는 소명을 다해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발달장애인도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저마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리고 차별과 편견과 소외가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꿈을 펼쳐 보였습니다.
사회의 어두운 분위기를 바꾼 음악 단체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가 유명합니다. 베네수엘라 경제학자 안토니오 아브레우(1939~2018) 박사가 1975년 마약과 총기, 폭력과 범죄가 넘쳐나는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시작한 음악 시스템입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빈곤층 청소년들의 교육 및 재활을 위해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청소년에게 사재를 들여 악기를 사주며 음악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클라리넷을 손에 쥔 소년은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고, 그다음에는 자신이 악기를 들고 도망가지 않은 것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엘 시스테마의 목적은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키워 성공한 음악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범죄와 마약에서 아이들을 구출하는 것이었습니다. 35년간 30만 명이 참가한 엘 시스테마의 청소년 중 80% 이상이 빈민층 아이들이었습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엘 시스테마를 통해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르치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감수성을 일깨워주었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엘 시스테마를 거친 아이 중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2010년 제10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했고, 사후인 2020년에는 윤이상 평화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하트하트오케스트라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오케스트라”라는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장애인 인권선진국인 유럽에서는 “발달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키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지원은 물론 구석구석 많은 손길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경이로운 교향악단을 키워냈다”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더 훌륭한 교향악단이 돼 꿈을 잃거나 포기하고 있는 지구촌의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도전의 꿈을 주는 오케스트라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후원 문의 1833-9005)
임순만 작가 ·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임순만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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