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가 6시간 만에 해제된 여파로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코스피 지수는 장중 한때 2% 넘게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비상계엄 발표 직후 한때 1440원을 돌파했던 환율은 4일 오전 9시 30분 현재 1414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계엄령 선포 직후와 비교하면 진정됐지만, 여전히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불안한 모습이다.
국내 증시는 정상 개장했지만,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하락 출발했다. 코스피는 1.97% 내린 2450.76으로, 코스닥지수는 1.91% 내린 677.59로 문을 열었다. 현재 코스피는 2450선 안팎에서, 코스닥은 670선 초반으로 2% 안팎의 하락세다.
코스피시장에선 외국인이 5130억 가까이 매도하며 하락을 주도하는 가운데 장중 한때 2% 넘게 떨어지며 2450선이 깨지기도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시 30분경 ‘자유헌정 질서 수호’ 명분으로 전국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선포(계엄법 제2조 제2항)하나,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 시 대통령은 이를 지체 없이 해제해야 한다(동법 제11조 제1항, 헌법 제77조 제5항).
계엄 선포 후 국회는 2시간 반 만인 25시경 의원 190명 재석, 찬성 190표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됐고, 6시간 만인 4시 30분 국무회의를 통해 비상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이에 국회에 모인 계엄군은 해산했다.
비상계엄은 헌정사상 13번째이자, 1979년 10·26 사건 이후 약 45년 만이다 과거 여수·순천 10·19사건(1948년) 및 6·25 전쟁 당시(1950~51년) 같은 전시상황이나 대통령 암살(1979년)을 제외하면 위기상황보다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수단인 경우가 다수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70~8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전국 계엄령 선포를 통해 시민들의 기본권 제한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 만큼 부정적 인식이 존재한다.
비상계엄 선언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해외 사례는 어땠을까.
국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초기 충격과 변동성을 동반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시기(1972년) 비상계엄 선언 후 초기에는 외국인 투자 유입과 경제 성장(연평균 7%)이 있었지만, 이후 과도한 부채와 부정부패로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비슷한 사례로 태국은 2014년 군사 쿠데타 이후 금융시장이 하락했지만, 외환 시장의 개입과 정치적 안정화 노력으로 경제적 영향을 부분적으로 완화할 수 있었다. 계엄령 발동 당시 SET 지수는 1.6% 하락에 그친 후 상승세를 이어갔고 바트화 환율도 1.2% 절하된 후 일주일 만에 원래 가격 수준을 회복했다.
터키(2016년) 계엄령 발동 당시 BIST 지수는 13% 하락, 리리화 환율은 6% 절하됐으나 10일 이후 원 가격 추세로 복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투자 심리를 악화시키고 향후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주선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는 4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현재로선 (국제) 신뢰회복을 할 수 있는 후속조치라는 게 특별할 게 없다고 본다. 당장 계엄이 어제 저녁으로 마무리됐다는 게 다행이고, 정상적인 민주적 절차가 계속돼서 정리되는 걸 빼놓고서는 (국제적인) 신뢰를 금방 얻기는 불가능 할 것”이라며 “펀더멘탈에 대한 공격을 당한 것이다. 최고 권력자가 그런 방식으로 나갈 때는 외부에서도 신뢰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대내외적으로 원화에는 뚜렷한 약세 요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또 계엄은 해제됐지만 우리나라 대외신인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투자증권 투자전략부는 4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정부는 적극적 시장 안정화 조치를 피력했다. 무제한 유동성 공급 계획 발표 및 4일 오전 한국은행 긴급 금통위 개최 예정으로, 국무회의 통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철회 공식화와 유동성 지원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 높이는 제어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연말 탄핵정국 진입 가능성 점증으로 국정 불안 요인까지 잔존한다”며 “외환-채권-주식 트리플 약세가 우려되고, 연말 금융시장내 불확실성 반복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대준·유영상·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은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단기 변동성 확대에 주의하고 방어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한국 증시는 싸진 편으로 밸류에이션 매력은 존재한다. 제조 관련 수출주와 현 정부 정책 관련주 약세 및 음식료. 통신 서비스 등 내수와 배당주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이어 “채권은 계엄 조기 해제 및 금융당국 대처로 우려 대비 변동성이 제한될 것”으로 “미국 CPI 전까지 국고 3년 2.6%, 국고 10년 2.75% 부근에서 약보합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환율의 경우 단기적으로 달러-원의 하단이 1400원대에서 높게 지지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문제는 중장기 원화 펀더멘털 훼손 가능성이라고 이들은 짚었다.
김·유·문 연구원은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한국 거버넌스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점”이라며 “향후 정치 불확실성 확대 또는 북한 도발 등 한국 고유의 지정학적 불안이 확대될 때마다 원화의 민감도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뚜렷한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비상계엄 사태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미칠 여파에 관해 "실질적 영향이 없다"고 평가했다.
킴엥 탄 S&P 전무는 4일 서울 여의도에서 S&P와 나이스신용평가가 공동 개최한 언론 세미나에서 "비상계엄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됐고 한국의 제도적 기반이 탄탄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한국의 현 신용등급(장기 기준 'AA')의 측정 방식(메트릭스)을 변경하거나 등급을 바꿀 실질적 사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루이 커쉬 S&P 전무도 "프랑스 등 이미 몇몇 국가들이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다"며 "한국 정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번 사례는 경제·금융 정책 기조에 대한 심각한 의견 불일치로 생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커쉬 전무는 "경제·금융 기조에 대해 국내 견해차가 크면 사태를 해결하기가 어렵고 불확실성이 불어나지만, 이번 일은 그렇지 않다"며 "어떤 형태든 불확실성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점차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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