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고령 인구의 빠른 증가로 초고령 사회 진입이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고령자를 위한 산업 육성에 매진하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은 여전히 뒤처져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해외 주요국들은 인공지능(AI), 로봇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고령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에이징테크’(Aging-tech) 산업 육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반면, 국내에서는 그나마 적은 예산마저 삭감돼 아쉬움을 남긴다.
에이징테크는 노화(aging)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고령자의 자립을 돕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활용되는 기술을 통칭한다. ‘실버 테크’(Silver tech)로도 불리는 에이징테크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의 첨단기술을 활용해 고령자의 건강관리, 안전, 커뮤니케이션 등을 지원해 독립적이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고령자의 수요에 맞춘 다양한 에이징테크 상품이 출시돼 많은 고령자 가구에서 사용되고 있다. KB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지속가능한 고령화 사회를 위한 에이징테크의 혁신 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미헬스(MiiHealth)는 음성 기반 대화형 AI 케어 플랫폼을 통해 사용자의 연령·건강상태에 따른 맞춤형 건강정보를 제공하고, 대화 과정에서 사용자의 건강과 감정변화를 진단해 복약 일정 및 질병 증상 등과 관련된 조언도 제공한다.
미국의 케어프리딕트(CarePredict)는 AI와 웨어러블 기기를 결합해 고령자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위험을 예방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손목에 차는 ‘템포’라는 시계형 기기를 통해 식사나 수면 등 일상적인 활동을 추적하고, 이러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낙상 위험이나 우울증 등의 건강문제를 조기에 파악하는 방식이다.
독거노인 가구 증가에 따라 이들의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고 타인의 도움 없이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에이징테크도 발전 중이다. 이스라엘의 인튜이션로보틱스(Intuition Robotics)는 AI 기반의 돌봄 로봇을 활용해, 고령자와 대화를 나누며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엘리큐’(ElliQ)라는 이름의 돌봄 로봇은 사용자와 대화 시 상대방을 향해 회전하고 빛을 발산하는 식으로 공감과 유대감을 표현하는 한편, 복약 일정 등 건강관리에도 도움을 준다.
한국 기업인 위로보틱스(WIRobotics)도 고령자 및 만성질환자의 보행을 보조하는 초경량 웨어러블 로봇 ‘윔’(WIM)을 개발해 판매 중이다. 이 로봇은 평지 보행, 계단 오르내리기, 하체 근력 강화 운동 등 다양한 모드를 제공하고 속도·균형·안정성·근력·민첩성 등 활동 지표도 제공한다.
각국 정부도 에이징테크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각종 지원 정책을 마련 중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8월 발표한 ‘고령친화산업 현황과 정책 방향에 대한 고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국립보건원 산하기관인 국립노화연구소(NIA)를 통해 에이징테크 관련 중소기업 지원 사업을 시행 중이다. NIA는 해당 사업을 통해 고령자가 지역사회에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사회적·행동적·환경적으로 지원하는 연구 및 개발을 우선 지원하고 있다.
영국 또한 비부처 공공기관인 영국 연구혁신기구(UKRI)를 통해 최신 기술을 활용한 고령자용 제품·서비스 개발을 위해 ‘고령자를 위한 디자인 상’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25개 이상의 에이징테크 프로젝트에 약 2000만 파운드(370억원)를 지원한 상태다. 또한 UKRI는 에이징테크 벤처기업과 함께 ‘건강한 노년 촉진 상’ 프로그램도 도입하고 상업화가 가능한 에이징테크를 연구하는 연구자에게 자금 및 전문가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에이징테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이를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다. 실제 그동안 집행돼오던 고령친화산업 육성사업 예산은 올해 전액 삭감됐다.
문제는 한국의 고령화 상황이 에이징테크 육성을 미룰 정도로 느긋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지난 7월 기준 19.51%로 내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지난 2018년 고령자 인구 비중이 14.3%로 고령사회(고령자 인구 비중 14% 이상)에 진입했는데, 불과 7년 만에 초고령사회로 전환되는 셈이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10년 미만인 국가는 OECD 중 한국이 유일하다.
김숙경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시행해 오던 고령친화산업 육성사업 예산이 2024년에 전액 삭감되는 등 고령친화산업의 첨단기술 중심 산업으로의 육성을 위한 계획이 상당히 미흡한 상황”이라며 “정책 측면에서든 그 정책을 집행하는 예산 측면에서든 현재 한국에서 고령친화산업 육성을 위한 계획이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이어 “개별 관련 부처에서든 정부 종합적으로든 고령친화산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없기 때문에 현재 고령친화산업 관련 정부 정책이 어떤 부처에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또한 향후 어떤 정책이 이루어질지도 전체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라며 “일본과 중국처럼 고령친화산업과 관련되는 부처가 함께 협력해 첨단기술 중심의 고령친화산업 발전을 위한 종합 계획을 마련·시행함으로써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동시에 고령친화산업을 신성장 산업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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