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 추이.(단위: 백만 달러) 자료=한국예탁결제원
[이코리아] 비상계엄 사태로 국내 증시가 얼어붙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미국 증시로 이탈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는 계엄이 해제된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7거래일간 총 2조4282억원(코스피 1조7647억원, 코스닥 6635억원)을 순매도했다. 계엄 해제 직후인 4~5일 이틀간은 저점 매수 기회를 노린 개인투자자들이 4940억원을 사들였지만, 이후 증시 약세가 계속되자 5거래일 연속 매도세를 보이며 2조9223을 되팔았다.
코스피의 경우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5거래일 연속으로 개인투자자들의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코스닥은 계엄 선포 전인 2일부터 10일까지 7거래일 동안이나 매도세가 계속됐다. 계엄 사태로 시작된 개인투자자들의 이탈에 코스피는 3일 2500.10에서 9일 2360.58까지 급락했다가, 최근 들어서야 다시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계엄 사태로 인한 불안감에 국내 증시를 이탈한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은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미국 증시로 이동하는 추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계엄이 선포된 3일 1070억4735만 달러에서 11일 1137억8513만 달러로 67억4778만 달러(6.3%) 증가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로 이탈한 것은 계엄 여파로 국내 증시가 부진한 반면, 미국 증시는 기술주 중심의 강세를 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 뉴욕 증시에서 나스닥 지수는 지난 3일(현지시간) 19480.91에서 11일 2만34.89까지 오르며 사상 처음으로 2만선을 돌파했다.
실제 이 기간 국내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인 미국 주식은 대체로 기술주였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4~12일 국내 투자자가 미국 증시에서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팔란티어(2억9885만 달러)였으며, 그 다음은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1억5353만 달러)였다.
물론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주식투자가 확대된 것은 최근의 현상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20~2021년 코로나19 시기 미국 증시로의 1차 ‘머니 무브’가 시작됐고, 이후 투자열기가 가라앉았다가 올해 들어 미국 증시가 호황을 보이면서 다시 2차 ‘머니무브’가 활성화되는 추세다. 다만 최근 계엄 사태로 국내 증시가 불안정해지자 꾸준한 미국 증시로의 자금 이동이 더욱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증권사의 수수료 수익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나신평에 따르면, 올해 국내증권사의 외화증권 수탁수수료 수입은 1.3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수익은 특히 외화증권 시장점유율이 높은 대형 증권사로 집중되는 모양새다. 현재 외화증권 수탁수수료 시장에 참여 중인 증권사는 총 28곳으로, 이 가운데 상위 8개사의 점유율은 90% 이상이다. 나신평에 따르면, 올해 1~9월 기준 외화증권 수탁수수료 증가분 3770억원 중 77%를 점유율 상위 초대형사 7곳이 가져갔다.
국내·외 위탁거래의 수익과 비용이 함께 반영된 위탁매매부문 손익으로 보면, 올해 9월까지 국내 증권사 전체 실적은 2098억원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7개 초대형 증권사가 1999억원으로 이익증가분의 95%를 차지했다. 대형 증권사와 중소형 증권사 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외화증권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계엄 여파로 서학개미 증가 추세가 더욱 빨라지면서 대형 증권사의 수익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가 약속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국회는 지난 10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등의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주주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 논의 등은 탄핵정국에 묻혀 언제 다시 재개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거래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위험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승환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위탁매매업은 불특정 다수의 일반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되는 특성상 증권사 플랫폼에 대한 신뢰도와 거래안정성은 상당히 중요한 자산이며, 한번 훼손될 경우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며 “변동성 장세 발생에 따른 거래 오류 등 돌발상황으로부터 국내 일반투자자들의 피해와 증권사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스템 대응력 및 위험관리 체계의 고도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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