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1년 12월 29일 경북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현장을 방문한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체코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은 무려 90%를 깎아 버렸다”며 정부 주요 정책 예산을 야당이 깎아 발목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회자료에 따르면 원전 예산 중 삭감된 건 없고 증액된 정부안 그대로 통과됐다.
산업부의 원전 관련 내년도 예산(전체 24개 항목 4889억 원 규모)은 한 푼 삭감 없이 정부안대로 통과됐다. 체코 원전 지원사업은 183억 원 전액 통과됐다. 소형모듈원전(SMR) 관련 예산은 54억 원(제작지원센터 구축), 329억 원(i-SMR 기술개발) 모두 삭감 없이 확정됐다.
삭감된 예산은 일부 다른 항목으로, 체코 원전과 무관하거나 논란이 있었던 사업들이다.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의 하나인 차세대 소듐냉각고속로(SFR) 기본설계 사업 예산은 여야 합의로 기존 70억 원에서 7억 원으로 대폭 줄었다. 이는 ‘국민적 논란이 있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금융위원회가 관장하는 '원전산업성장펀드' 사업 예산도 여야 협의로 400억 원에서 350억 원으로 50억 원 삭감되었지만, 이 역시 체코 원전 수출과는 무관하다.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은 "삭감된 예산은 전체 원전 예산에서 극히 미미한 규모로, 주요 원전 사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특히 체코 원전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허 의원은 "윤 대통령이 내란 정당화를 위해 '원전 예산 삭감'을 내세우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며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반헌법적 발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은 "감액된 예산 항목과 내용을 제대로 검토했는지 의문"이라며 "윤 대통령이 계엄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기초과학을 언급한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관련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담화를 발표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앞서 체코 정부는 지난 7월 24조원대로 추산되는 신규 원전 2기(두코바니 5·6호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수원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를 선정했다. 양측은 내년 3월까지 원전 2기 건설 최종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가격 등 세부 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윤 대통령의 계엄사태 여파로 체코 원전 수주 사업을 비롯해 현 정부의 외교·통상 정책 전반이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체코 당국이 내년 3월로 예정된 한국과의 신규원전 건설 계약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토마스 엘러 체코 산업부 원자력신기술 담당 국장 대행은 지난 12일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이든 다른 어떤 국가든 내부 정치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지만, 현재로서는 팀코리아와의 계약 체결이나 신규원전 건설 프로젝트 진행이 지연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엘러 국장은 또 “우선협상대상자인 한수원과 투자자 측 간의 협상은 예정대로 진행 중”이라며 “계획대로 2025년 3월 원전 EPC(설계·조달·시공) 계약 체결을 목표로 기술·상업적 측면에 협상의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갑작스런 계엄 사태가 향후 원전수주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글로벌 기술개발 경쟁이 치열한 소형모듈형원전(SMR) 분야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국이 안정되고 차기 정부의 정책 기조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원자력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전사업은 G2G(정부 대 정부) 사업인 만큼 경제성과 기술력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보증과 상호 신뢰가 핵심”이라며 “이번 담화는 국민적 논란과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윤 대통령의 원전 정책 및 담화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루빨리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만이 K-원전의 신뢰성과 경쟁력을 담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그린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 포함과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인한 전력수요 증가 등이 원자력 산업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국내외 주요기관들은 SMR시장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정KPMG이 올해초 한국원자력협력재단과 공동으로 발간한 ‘미래 에너지 시장의 올라운더(All-rounder)를 꿈꾸는 SMR’ 보고서에 따르면 SMR시장은 2040년까지 3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SMR은 기존 원전 대비 적은 용량(300MW 이하)의 중소형·모듈형 원자로를 통칭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약 80여종의 SMR이 개발 중에 있으며, 기술표준은 부재하는 상황이다.
SMR은 대형 원전과는 다르게 전력의 수급 변동에 따라 발전량 조정이 가능하여 재생에너지의 불안정한 간헐성을 보조하면서 분산전원의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대형 전기트럭 충전 등 전기차(EV) 충전소에서의 활용성도 주목받으며 발전 부문에 활용될 SMR 예상 수요는 2050년까지 51.5% 증가한 72GW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10대 그룹 계열사 절반이 넘는 6곳, 한화가 한화오션(전 대우조선해양)이 인도네시아에서 해상 SMR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감안하면 10대 그룹 중 7곳이 SMR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SMR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들을 제시하며, 가장 먼저 원자력 발전 부문을 꼽았다. SMR은 대형 원전과는 다르게 전력의 수급 변동에 따라 발전량 조정이 가능하여 재생에너지의 불안정한 간헐성을 보조하면서 분산전원의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대형 전기트럭 충전 등 EV 충전소에서의 활용성도 주목받으며 발전 부문에 활용될 SMR 예상 수요는 2050년까지 51.5% 증가한 72GW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수소 부문도 주목할 수 있으며, 원자력 수소 생산 시 부산물이 산소(O2)뿐이라 천연가스로 만든 수소보다 친환경적이다. 정부는 2050년까지 연간 2,790만 톤 청정수소 공급계획 아래 그 중 300만 톤은 그린수소로 공급한다고 발표했지만, 국내 수소가격이 1800원/kg 수준이 돼야 경제성이 확보될 것으로 분석되는 상황에서 2500원/kg로 예상되는 그린수소는 여전히 비싸다. 이때, 저탄소 발전원 중 가장 저렴한 원자력을 활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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