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유상증자로 인한 주가 폭락이 반복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주주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장 마감 후 기습적으로 유상증자를 발표하는 ‘올빼미 공시’가 성행하면서, 주주가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공시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3일 코스닥 상장사 차바이오텍은 전거래일 대비 4350원(△29.27%) 떨어진 1만510원에 거래를 마치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26일 오후 1시 현재 차바이오텍은 소폭 상승한 1만890원에 거래되고 있으나, 이전 가격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며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차바이오텍 주가가 급락한 이유는 지난주 발표한 유상증자 계획 때문이다. 차바이오텍은 지난 20일 시설·운영자금 조달 등을 목적으로 2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차바이오텍은 내년 3월 25일 주당 1만800원에 신주 2314만8150주를 발행할 계획인데, 이는 총 주식 수의 39.31%에 해당한다.
유상증자로 인한 주가 폭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MBK파트너스와 경영권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은 지난 10월 30일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가 주가가 하한가(29.94%)까지 폭락했다. 반도체 기판 제조업체 이수페타시스도 지난달 8일 총 발행 주식의 32%에 해당하는 2010만주의 신주를 발행해 55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다음 거래일인 11일 주가가 7200원(△22.68%)이나 떨어졌다.
물론 유상증자가 꼭 악재만은 아니다. 신사업 진출, 성장동력 확보 등을 목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유망 기업의 경우 오히려 유상증자 이후 주가가 오르기도 한다. 실제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2020년 11월 6일 2차전지 소재 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1조273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이후 주가가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하지만 국내 증시에서 유상증자는 일반적으로 주가 하락 요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주 발행으로 전체 주식 수가 늘어나면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데다, 기존 주가 대비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재무구조 개선, 경영권 방어 등을 목적으로 한 유상증자의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주주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는 유상증자가 별다른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된다는 것이다. 상장사들은 대체로 기존 주주들의 반발을 피하고자 장중이 아닌 장 마감 이후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장이 다시 열리기 전까지 이틀의 시간을 벌 수 있는 금요일 장 마감 후가 가장 선호된다. 실제 차바이오텍도 지난주 금요일 장 마감 이후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다.
이수페타시스는 지난달 8일(금) 오전 시설 투자 및 유상증자 관련 이사회를 연 뒤 호재성 소식인 시설 투자 계획은 시간외 단일가 매매 시간인 오후 4시 55분에, 악재인 유상증자 계획은 장 마감 후인 오후 6시 44분에 공시했다가 주주들의 공분을 샀다. 시차를 두고 주주에게 서로 다른 정보를 공개하는 꼼수로 비난을 피하려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말이나 연휴 등 휴장 기간을 앞두고 장 마감 후 기습적으로 악재성 정보를 공시하는 ‘올빼미 공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021년 국내학술지 ‘국가정책연구’에 발표된 논문 ‘기업의 전략적인 전자공시 시간 선택 행태에 관한 탐색적 연구: 올빼미 공시는 사라졌을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공시 종류에 따라 공시 시간을 차별화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연구진은 2001~2020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된 정기공시 104만건을 분석했는데, ▲단일판매공급계약 ▲특허취득과 같은 호재성 공시는 장중에, ▲유상증자 ▲감자결정 ▲횡령·배임 등 악재성 공시는 장 종료 후, 금요일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지난 2019년 5월 금융위원회가 올빼미 공시 근절대책을 시행하기 시작했지만, 반‧분기 보고서 등록 시간이 앞당겨졌을 뿐 유상증자 등의 악재성 공시 시간은 차이가 없었다.
금융당국의 조치 이후에도 상장사들의 ‘올빼미 공시’ 행태가 바뀌지 않은 것은, 이를 제재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논문을 작성한 중앙대학교 연구진은 ”올빼미 공시에 대해서는 명단 공개와 재공지를 통한 접근성 제고만 근절 방안에 담겨 있고 제재 대상에서는 제외되기 때문에 기업의 신속한 공시 책무성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어 ”정기공시 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에게 더욱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주요사항보고에 해당하는 공시에 대해서도 올빼미 공시가 근절될 수 있도록 금융 당국의 새로운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최근 계엄·탄핵정국으로 정부가 사실상 국정 동력을 상실한 데다, 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마저 여야가 이견을 보이며 지연되고 있어 ‘올빼미 공시’ 규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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