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부대행사인 유레카파크가 개장되는 베네치안 호텔. 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이코리아] CES2025가 올해도 세계인을 관심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10% 정도 늘어난 160개국의 4,500여 기업이 전시회에 참가했다. 14만명 참가자들이 전시장을 방문했고, 6천개 이상 언론이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필자는 올해 다른 일정으로 전시회에 직접 방문하지 못했지만, CES가 사전등록자에게 보내온 메일과 현장 보도를 정리하여 CES 소식을 전한다.
2023년이 초거대 언어모델(LLM)을 채용한 인공지능의 원년이었다면 올해는 자율적이고 목표지향적인 AI와 물리학원리를 이해하는 AI의 개념이 부각되었다. 젠승황의 기조연설에서 드러난 ‘파워 에이전틱AI’의 개념은 AI가 외부의 개입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목표를 설정한 후 달성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노력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한편 ‘물리학원리를 이해하는 AI’는 뉴턴역학과 양자역학 등 물리법칙을 이해한다. AI가 물리적 환경을 이해하므로 현실에 존재하기 힘든 상황을 착오로 그리는 것이 줄어들게 된다. 또한 AI는 물리적인 환경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을 자유롭게 제어한다. 인공지능은 이제 동물의 움직임이나 감각기관을 모방한 로봇의 제작에 활용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1월 취임을 앞두고 있지만 중국기업의 전시회 참가는 더욱 빛났다. 올해에는 중국에서 온 1,300여개사가 출품했는데 미국 참가 업체 1,500개에 근접하며 기술중국을 과시했다. 한국기업도 매년 1,000개 회사 이상이 꾸준히 전시회에 참가하는데 CES는 코엑스에서 개최된 전시회와 별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올해는 일본 기업의 추격도 거셌는데 파나소닉은 AI공급사로 탈바꿈을 시도했고, 소니는 2차원 콘텐츠를 넘어선 3차원 콘텐츠 공급에 주력했다.
SK에서 출하를 준비중인 16층 HBM모형. 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작년 CES에서는 '온디바이스 AI'가 주목을 끌었다면 올해는 1가정 1로봇시대를 앞두고 '휴머노이드 로봇'과 '피지컬 AI'가 눈길을 끌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로봇을 위한 챗GPT의 모멘트가 다가 오고 있다."고 기조연설에서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한 엔비디아의 구체적인 대응방안으로 2천억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프로젝트 디짓’과 로봇개발을 위한 ‘플랫폼 코스모스’를 발표했다.
젠승황은 로봇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라스베가스의 새로운 명물 스피어에서 전시되었던 로봇 아우라는 일반인이 '지능형 로봇'을 보다 쉽게 체험하도록 했다. 이 로봇은 단순한 기계를 넘어, 감정을 표현하고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 ‘G1’, 리얼보틱스의 '아리아' 등도 고객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시회의 로봇들은 진보된 대화 능력, 실제 피부와 유사한 외형, 섬세한 표정과 움직임으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2023년 대만을 다시 추월했지만 IT산업의 일부 주도권이 대만계 엔비디아나 TSMC 등에 넘아간 것은 여전히 아쉬울 따름이다. 젠승황이 “삼성전자의 HBM(고대역폭메모리) 성공을 확신한다”고 언급하자 지난 8일 하루 동안 삼성전자의 주가는 3% 정도나 상승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갤럭시 S25의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한국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AP)인 ‘엑시노스2025’의 준비가 늦어져 일부는 퀄컴에서 조달받고, 일부 메인기판은 중국의 패스트프린트에서, 일부 D램은 미국 마이크론의 제품을 조달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현재 일부 기술 분석사이트틀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HBM재설계에 대한 암울한 소식이 전해지자 일반 대중은 반사적으로 중국 CXMT의 HBM 양산 능력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미국은 올해 AI관련 반도체의 우회 수출제한으로 중국 산업계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작년 수출 200조원을 달성한 주력산업인데, 이번 전시회에서 중국과 일본의 추격이 거셈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필자는 CES를 방문할 때 인근 아리조나의 거래처를 자주 방문하는데 TSMC의 아리조나 플랜트는 이미 4나노 제품 양산에 성공하여 미국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한편 SK의 최태원 회장은 젠슨황을 만난 후 “방금 우리 제품을 팔았다”고 너스레를 떨며 기술개발속도가 엔비이아의 요구수준보다 빠름을 자랑했다. SK는 이미 16단 이상의 HBM을 시장에 공개한 바 있다.
자동차가 CES의 한 축을 차지한 지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지만 올해 자동차업계는 유난히 주목을 받았다. 도요타의 아키오 회장이 직접 전시회에서 참석하여 새로운 스마트시티 모델인 우븐시티를 소개했다. 도요타 회장은 “자동차는 물론 우주선까지 띄우는 도시를 만들 것"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밝혔다.
이 회사가 주도하는 우븐시티에는 올 가을 100명이 입주하여 새로운 실험을 진행한다. 필자도 시즈오카를 자주 방문하는데 후지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과 미래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우븐시티의 큰 특징이다.
하지만 모빌리티 부문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중국업체의 성장 괄목할 만하다. 샤오펑은 차량의 뒷부분이 드론으로 바뀌며 원하는 곳에 차량을 주차하고 날아서 이동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이 회사 창립자 왕탄은 관련 제품을 ‘육상의 항공모함’이라고 불렀다.
한국기업인 삼보모터스는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와 배터리를 동시에 채용한 하이브리드 도심형모빌리티(UAM) 제품을 CES에서 전시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이미 생소한 개념이 아닌데, 한국도로공사는 남한강 휴게소 옥상에서 일부 플라잉카의 시뮬레이션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모빌리티 부분의 또 다른 혁신은 ‘앱테라모터스’의 태양광 전기차였다. 돌고래의 외관을 가진 이 자동차는 야외공간에 전시되었는데, 전시장 외부를 질주하던 자율주행차량를 진부한 제품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작년 한국의 자동차와 부품의 수출은 약140조원을 넘었는데, 올해는 한국기업의 자동차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필자는 현재 다양한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수리하고 있는데, 현대모비스의 ‘홀로그래픽 윈드쉴드’는 전면 유리창을 모두 디스플레이로 사용하는 제품이다. 조수석의 승객도 차창밖 전경을 바라보면서 전면 유리창에 투영된 동영상을 즐길 수 있다.
LG전자가 한국에서 판매하는 OLED 게이밍 모니터. 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한편 LG이노텍은 전시회에서 차량용 ‘플렉스블 입체조명’ 기술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구부러지는 얇은 기판 위에 여러 광원을 배치하여 조명을 다양한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양자컴퓨팅에 관한 내용은 CES 참가자에게 사전 배포된 안내문에 소개되면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정작 젠승황은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30년이 걸릴 것이란 발언을 제시했고, 이는 일부 양자컴퓨터 기업의 주가폭락을 부추겼다. 메타의 CEO 마크 주커버그도 이에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지만 양자컴퓨팅 기업 ‘디웨이브 퀀텀’의 CEO는 이에 반발하는 입장을 보이며 양자컴퓨팅의 시대는 지금이라고 홍보했다.
디스플레이의 작년 수출액은 20조원을 넘었는데 삼성전자의 IOT제품과 LG디스플레이의 투명디스플레이들은 컨벤션센터 중앙홀을 밝혔다. 다양한 디스플레이들은 이미 100인치 이상으로 대형화되는데 하이센스와 TCL 등 중국업체의 추격이 매서운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휴대폰에 장착되는 고급 OLED시장에서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매년 CES가 개최되는 라스베가스 컨벤션센터 전경. 사진=여정현 필자.
한국 업체들이 가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막상 전시장 밖에서 관람객을 발길을 붙잡은 것은 스피어 전시장이었다. 거대한 반구형태의 스피어는 100미터 크기의 반구로 내외부를 LED모듈로 덮었다. 스피어는 올해 외부벽면에 전시회를 빛낸 인간형 로봇에 대한 동영상을 상영했다. 한국에서는 인스파이어 리조트가 150m의 LED터널을 자랑하지만 스피어의 전체 체적은 이를 훨씬 능가한다. 한편 LG전자는 라스베가스에서 작년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아토믹 골프’에 136인치 LED월 등 다양한 디지털 사이니지를 설치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헬스케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CES에서 꾸준했다. 맥주로 유명한 일본의 기린 홀딩스가 출시한 숟가락은 미세한 전류가 흐르도록 하여 사용자가 소금을 많이 넣지 않아도 짠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모날이 출시한 캔버스 스피커는 매일 매일 개인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여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라스베가스 컨벤션 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베네치안 엑스포에서는 올해도 수많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유레카파크(Eureka Park)가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젊은 창업자와 투자자들 연결에 기여했다. 삼성전자는 C랩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사내벤처를 지원하는데 올해는 자율주행 골프 트롤리나 빌딩관리 솔루션 등을 지원했다. 네이버에서는 D2스타트업 팩토리(D2SF)를 운영하는데 올해 어린이 식습관 개선 솔루션을 지원했다. 한국기업 로보락은 유레카파크에 부스를 개장했는데 기존 로봇청소기가 바닥을 쓸면서 청소하던 것에서 쓰레기를 줍는 팔까지 달았다.
라스베가스가 세계적으로 IT덕후들을 관심을 끈 가운데 CES는 인근 LA산불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했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지 않았지만 이로 인한 피해가 20조원이 넘을 것이란 안타까운 보도들이 나온다. 올해의 CES2025는 AI, 로봇 등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사였다. 이제 한국 기업들은 전시회에서 소개된 변화를 살피면서 혁신을 지속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여정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회장비서실에서 근무했으며,
안양대 평생교육원 강사, 국회사무처 비서관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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