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회장이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친인척 부당대출' 혐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금융감독원이 우리금융·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규모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2배 이상 불어난 데다, 상당한 규모가 현 임종룡 회장 취임 후 취급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도 다시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지난 4일 발표한 ‘20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은행에서는 지난해 9월 말까지 총 2334억원, 101건의 부당대출이 취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규모는 기존에 알려진 350억원 외에도 다수의 임직원이 관여된 380억원이 추가로 적발돼 총 73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번 부당대출을 주도적으로 취급한 우리은행 전 지역본부장 A씨는 B지점을 통해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법인에 42억7000만원(6건)의 대출을 취급하면서 자금용도・상환능력 평가를 소홀히 하는 등 내규를 다수 위반했다. A씨는 우리은행에서 퇴직한 후 손 전 회장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재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이 현 경영진 취임 이후에도 상당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총 730억원 중 451억원(61.8%)은 임종룡 현 회장이 취임한 지난 2023년 3월 이후 취급됐다.
부실 우려도 심각하다.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중 정상적으로 상환이 되지 않고 연체된 대출 규모는 338억원으로 전체 대출 규모(730억원)의 46.3%에 달한다. 임 회장 취임 후 취급된 부당대출 451억원 중 부실화된 대출 규모는 27.3%다. 금감원은 기존에 적발된 부당대출 350억원 중 대부분(84.6%)이 부실화된 점을 고려할 때, 현 경영진 취임 이후 취급되고 정상으로 분류된 328억원도 향후 부실화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이 현 경영진 재임 기간에도 상당 규모로 취급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임 회장 등 우리금융·은행 현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임 회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친인척 부당대출 등으로 우리금융의 신뢰를 떨어트린 점에 대해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제가 잘못해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 회장이 취임 후 1순위로 추진해온 우리금융의 비은행 강화 전략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는 동양·ABL생명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열지도 않고 해당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하기로 미리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우리금융은 다자보험과의 주식매매계약 당일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불과 20분 간격으로 개최해, 리스크관리위원회 심의 내용이 이사회 안건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도록 했다. 특히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 인수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 계약금을 몰취하는 조항이 주식매매계약이 포함됐는데, 이러한 사항조차 이사회에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만약 이번 검사결과로 인해 우리금융이 경영실태평가에서 3등급 이하를 받아 동양·ABL생명 인수에 실패하면, 우리금융은 계약금 1550억원(인수가의 약 10%)을 날리게 된다.
한편, 금융당국은 이번 검사결과를 토대로 중징계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구현 ▲건전성·리스크 관리 강화 ▲자율쇄신을 통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세부방안을 마련해 추진하는 한편, 부당대출 취급 등 위법 사항에 대해서는 엄정 제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은행 임직원은 경영진이 제시한 외형성장 목표만을 추종하거나 은행 자원을 본인 등 특정 집단의 사익을 위한 도구로 삼아 부당대출 등 위법행위 및 편법영업을 서슴지 않았다”며 “금융회사는 금융사고를 축소하려 하거나 사고자를 온정주의적으로 조치함으로써 대규모 금융사고가 반복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이어 “금융회사가 단기 성과주의를 지양하고, 지배구조 선진화, 건전성·리스크관리 중심 영업 및 엄정한 조직문화 확립 등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겠다”라며 “법규위반 사항은 그 책임에 맞게 엄중 제재하는 등 검사결과 후속처리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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