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농협중앙회
[이코리아]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농협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이 거센 데다, 지방 이전으로 인해 발생할 경제효과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만큼 논의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3일 ‘농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농협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농협법 114조는 농협중앙회 사무소를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해당 규정을 없애고 대신 중앙회 사무소 소재지를 정관에 따라 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상호저축은행법이나 한국주택금융공사법은 본사 위치를 정관에 따라 정하도록 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의 경우 본사가 서울에 있지만, 주택금융공사 본사는 지난 2014년 부산으로 이전한 상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농협중앙회 본사를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한 문 의원 등 12인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등의 추가적인 이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으나, 현행법은 농협중앙회의 주된 사무소를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어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상충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서울시는 2023년 기준 농가인구가 1만3667명으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농가인구가 가장 적어, 농협중앙회의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를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며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를 정하거나 지사무소를 둘 때에는 국가균형발전을 고려하도록 함으로써 지역 간의 불균형 해소를 통한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이 농협 지방 이전 논의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2년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농협중앙회 본사를 전라북도로 이전하는 내용의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이듬해 신정훈 민주당 의원도 농협·수협 본사를 전라남도로 이전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 또한 2022년 농협 본사 및 지사무소 소재지를 정할 때 국가균형발전과 지역별 농가인구, 경지면적, 농업생산량 등을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의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농협 본사 이전 논의는 대체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농업지역에 농협 본사를 둬야 한다는 명분은 충분하지만, 농협이 공공기관이 아닌 데다 내부 반발도 거세기 때문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NH농협지부 우진하 위원장은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농협은 공공기관이 아닌 자주조직으로서 국가와 공공단체는 중앙회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없다”며 “본사 소재지를 강제로 변경해서 수조원의 이전비용을 발생시키고, 수만명의 직원과 가족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탈하는 시도는 위헌이고 위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농협 노조는 본사 이전 논의가 지역 표심을 노린 정치적 거래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우 위원장은 “농협 본사 하나만 옮겨도 미니 신도시를 채울 수 있는 규모이니 정치인들은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공약을 남발해왔다”며 “국회의원 몇 명의 이익 때문에 수만명은 농촌으로 강제 이주해야하고 농협은 수조원의 이전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입법권의 남용을 넘어 폭력”이라고 말했다.
농협 본사 이전이 중앙회장 연임을 위한 사전 작업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우 위원장은 “이성희 전 회장이 셀프연임의 욕심 때문에 농업지원사업비 2배 인상을 반대하지 않았고 지난 국회에서 농협법이 통째로 통과될 위기에 처했었다”라며 “아직 관련 법안이 발의되지 않았지만 민주당이 셀프연임법 개정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농협 본사 지방이전을 사측이 허용하는 그림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고 우려했다.
농협 본사 이전으로 인해 발생할 경제적 효과에 대한 청사진도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진행형인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의의 경우에도 찬반 양측이 정반대의 예상을 내놓고 있다. 정부·여당은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면 2045년까지 비수도권에 125조1000억원의 시설자금이 투자되고,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300조7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가 기대된다”는 금융위원회 분석을 이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산은 노조는 부산 이전 시 산은은 7조원, 국가 경제는 15조원의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는 한국재무학회의 분석을 반대 근거로 내밀고 있다. ‘+300조원’ 대 ‘–15조원’으로 의견이 크게 엇갈리면서 산은 부산 이전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한편, 한국노총도 10일 성명을 내고 “정치권은 특정 지역 표심을 노린 정치적 포퓰리즘적 행태를 중단하라. 정치적 욕망을 위해 농업과 금융 노동자들의 삶을 희생시키는 법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농협 본사 이전 논의가 22대 국회에서는 결론을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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