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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등생 피살사건 보도, "정신질환 편견 가중" 우려 확산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5.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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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초등학교 피살 사건이 발생한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한 초등학교 1층에 김하늘(7)양을 추모하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지난 10일 대전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피살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해당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자칫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를 퍼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 매체는 전문가 의견 등을 이용해 정신질환과 범행의 인과관계를 섣불리 추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 정신질환이 범행 원인? 언론 보도에 편견·낙인 강화 우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지난 12일 입장문을 내고 “가해자의 특정 진단명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면서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편견만 가중시킬 뿐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실에 기반해 사건의 사회구조적 요인과 개선방안에 집중해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지원단은 이어 “충격적인 사건이 또 다른 편견과 혐오로 이어지지 않도록 언론에서는 보도하기 전에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을 확인하고 반영하고자 노력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 지난해 12월 제정한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은 정신건강 관련 내용의 보도가 국민의 정신건강 인식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언론을 통해 정신건강(정신질환)에 대한 긍정적 접촉을 늘려 사회적 편견을 줄인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권고기준은 언론이 정신질환과 관련된 내용을 보도할 때 ▲정신질환에 대해 편견·낙인을 강화할 수 있는 부정적 표현을 배제하고 ▲기사 제목에 정신질환 관련 언급을 지양하며 ▲정신질환을 범죄의 동기·원인과 연관시키는데 최대한 신중할 것을 요청한다.

서울시도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서울시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 등과 지난 2022년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을 공동 개발한 바 있다. 지난해 1.1로 개정된 가이드라인은 권고기준과 마찬가지로 ▲범죄의 원인을 정신질환으로만 판단하지 말 것 ▲정신질환 관련 용어 사용에 주의할 것 ▲기사 제목에 정신질환 관련 언급을 최소화할 것 ▲정신질환 당사자 및 전문가 등 다양한 취재원의 의견을 반영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0일 발생한 초등학생 피살사건 관련 보도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문제는 이번 초등생 피살사건에서도 가해자에게 우울증 치료 병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언론의 관심도 정신질환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에서 ▲대전 ▲초등학생 ▲살해 ▲피살 등의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 사건이 발생한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 총 1381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날짜별로 보면,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1일 가장 많은 515건의 기사가 쏟아졌으며, 이후 기사량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초등생 피살사건 관련 보도에 가장 자주 등장한 연관 키워드는 피해 아동의 이름이었지만, 그다음으로 기사에서 언급된 빈도가 높았던 키워드는 ‘우울증’이었다. ‘정신질환’ 또한 사건 관련 보도에 언급된 빈도가 4번째로 많았다.

권고기준과 달리 기사 제목에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명시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실제 사건 초기 보도를 살펴보면 “초등상 살해한 우울증 교사”, “정신질환 교사의 참극”, “우울증 교사 1만명, 우리 학교 안전한가” 등의 제목을 한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각한 정신질환이면 교단에 서서는 안된다”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의 발언을 기사 제목에 인용한 경우나, 지난해 12월 우울증을 앓던 교사가 3세 아들을 살해한 사건을 “정신질환 앓던 교사, 아들 살해” 등의 제목으로 전한 기사도 적지 않았다.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1의 주요 내용. 자료=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권고기준 및 가이드라인은 기사 제목에 정신질환 관련 용어가 사용될 경우 사회적 편견이 형성될 수 있는 만큼 자극적이지 않게 순화된 표현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부득이하게 제목에 정신질환을 언급해야 하는 경우 정신질환과 범죄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확인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하며, 특정 질환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초등생 피살사건 보도에서도 기사 제목에 구체적인 질환명을 명시하거나 정신질환을 범행의 원인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표현이 사용되는 등 권고기준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는 사례가 발견됐다. 이 때문에 언론이 정신질환 보도 권고기준·가이드라인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강대학교 연구진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도입 전․후 정신질환에 대한 언론 보도 양상’ 논문에 따르면,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이 발표된 2022년 4월 28일을 기준으로 전·후 1년간의 일간지 기사 88건을 분석한 결과 정신질환 관련 보도 행태에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정신질환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조장하는 부정적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가 가이드라인 제정 전 24.5%, 제정 후 28.6%로 가장 낮았다. ‘잔혹범죄’, ‘참극’, ‘난동’, ‘흉기 테러’, ‘시한폭탄’, ‘마구 찔러’ 등 정신질환자가 폭력적이거나 자기통제가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을 언론이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

연구진은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의 보편적 활용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가이드라인 요약본을 모바일로 배포하거나 가이드라인을 준수한 기사를 선정해 시상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연구진은 이어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한 언론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확대해야 한다”며 “정신질환 관련자와 언론 전문가로 모니터링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일부 매체, “우울증 범행 원인 단정 섣부르다” 지적... 환자들 치료 기피 우려

◇ 일부 매체, “우울증 범행 원인 단정 섣부르다” 지적... 환자들 치료 기피 우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화될 것을 우려하며 범행과 우울증의 인과관계를 섣불리 확신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매체도 많았다.

중앙일보는 13일 기사에서 “(가해자의) 범행 전후 행동이 우울증 악화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다수의 정신질환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했다. 중앙일보는 “우울증 악화로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 조절이 안되어서 충동적으로 자해나 자살로 이어지는 일은 있지만,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심해지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하며 “범행 전후 A씨의 행동을 뜯어보면 우울증이 악화한 환자의 증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또한 13일 기사에서 “범죄심리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해 교사의 우울증 병력만으로는 범행 이유나 동기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나온다”고 전했다.

유재두 목원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을 통해 “가해자의 우울증으로 인해 범죄가 발생했다고 단순화하기 어려우며, 개인적·사회적 환경에 대한 불만이 자기 통제력을 넘어서면서 범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본인이 우울증이 있다고 진술한 것은 범행 후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잘못을 인식하고 빠져나갈 수 있는 얘기를 꺼낸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화되면 환자들이 치료를 기피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일보는 13일 기사에서 “우울증 환자가 범행했다는 식의 설명은 과도한 일반화”라는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하며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효과’가 커질 수 있고 환자들도 치료를 받는 대신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며 숨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이어 “이번 비극이 우울증을 앓는 교사들이 이를 숨기고 오히려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나종호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의 페이스북 발언을 소개하며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사건이 우울증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져 치료 대신 병을 감추도록 환자들을 몰아가는 분위기가 될까 우려한다”고 전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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