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한 초등학교에 김하늘(7)양을 추모하는 합동분향소.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대전경찰청이 학교에서 초등생을 살해한 교사의 진료 소견서 적절성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이에 소견서를 발급한 의사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냐며 의사의 책임이 어디까지 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고(故) 김하늘 양을 살해한 교사 A 씨는 명씨는 지난해 12월 우울증 치료를 이유로 6개월의 휴직을 신청하며 ‘심각한 우울감과 무력감으로 최소 6개월의 안정적 치료가 필요하다’라는 내용의 의사 소견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하지만 A 씨는 24일 만에 같은 의사로부터 전과는 상반되는 내용의 ‘증상이 거의 사라져 직무 수행에 문제가 없다’라는 내용의 소견서를 받아 조기 복직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개인의 범죄 행위에 대해, 의료진이 과도한 책임을 짊어져야 할 근거는 없다”라며 “의사가 모든 위험을 예측하고 사회적, 법적 판단을 하거나 윤리적 부분을 평가하기에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진단서는 작성 당시의 의학적 판단을 근거로 소견을 기술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라며 “살인은 범죄자 개인의 인격과 도덕성이 영향을 미친다. 잔인한 행위를 정신질환 탓으로 돌린다면 정신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환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병원 역시 “진단서는 의학적인 판단하에 이뤄진 것으로 잘못된 점이 없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랑스에선 2012년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살인 범죄로 담당 의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프랑스 마르세유 법원은 조엘 게야르의 살인사건과 관련해 그를 담당한 에두아르 툴루즈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다니엘 카나렐리에 대해 ‘살인’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 카나렐리에게 환자가 공공에 얼마나 위험한지 판단하는 데 실패한 ‘과실’을 저질렀다면서 피해자 유족에게 배상금 8500유로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 사례는 고 하늘이 양의 경우와 다르다. 프랑스의 사례는 편집성 조현병을 앓는 게야르가 면담 치료를 받던 중 병원에서 탈출해 벌어진 사건으로, 당시 병원 의료진들이 환자의 위험성을 알렸지만, 의사인 카나렐리가 이를 무시하고 환자를 감독할 의무를 소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각에서는 “형사처벌을 우려한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에게 과도한 진료를 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위험한 환자 담당을 꺼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정신과 의사에게 의학적 판단을 넘어선 진단서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라며 “공무원의 직무 수행 가능 여부는 독립적인 평가 기관이나 위원회를 통해 객관적으로 심사돼야 한다. 공공의 책임하에 교사들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병가, 휴직 및 복직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공정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세계적으로 3억 100만명의 사람들이 불안장애를 가진 채 살고 있고, 2억 8000만 명이 우울증을 가진 채 살고 있다.
이에 WHO는 2022년 '일터에서의 정신건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정신 건강상 문제는 일이 인과적으로 기여했는지와는 관계없이 발생한다.”라며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직업 세계에서 차별받거나 불공정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WHO는 정부와 고용주를 구분하여 정신건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가이드라인은 “정부가 정신건강 문제로 휴직 중인 사람들에게 정신건강 증상의 완화 및 휴직 기간의 단축을 위해서 직무중심치료에 더해서 근거 기반의 정신건강 임상 치료(병행), 또는 근거 기반의 정신건강 임상치료가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심리사회적 장애를 포함하여 심각한 정신건강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고 유지할 수 있도록 강화된 지원고용과 같은 직업 및 경제적 참여를 포함하는 회복 지향의 전략이 제공되어야 한다.”라고 제안하고 있다.
고용주에겐 “관리자들이 정신건강을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가이드라인은 "관리자들이 정신건강과 관련한 지원이 필요한 노동자들을 식별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되어야 하며, 관리자들에게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팀원들을 알아보고, 직무 스트레스 요인을 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라고 권고하고 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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