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예대금리차 추이. 자료=은행연합회
[이코리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있지만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가계대출 정책이 혼선을 빚으며 대출금리가 오히려 상승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4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가 지난해 하반기 들어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햇살론, 안전망 대출,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등 정책서민금융상품을 제외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예대금리차(단순 평균)는 지난해 7월 0.43%포인트(p)에서 올해 1월 1.38%p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은행별로는 농협은행이 올해 1월 기준 1.46%p로 가장 높았으며, 그 뒤는 신한은행(1.42%p), 하나은행(1.37%p), 우리은행(1.34%p), 국민은행(1.29%p)의 순이었다. 은행마다 차이는 있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예대금리차가 약 3배에서 9배까지 확대된 셈이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한 이후 예대금리차가 확대됐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3.50%에서 3.25%포인트로 인하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0.50%에서 0.75%로 0.25%p 인상한 이후 3년 2개월만에 통화정책 기조를 바꾼 것. 한은은 이후 같은 해 11월, 올해 2월 두 차례 더 금리인하를 단행해 현재는 기준금리가 2.75%까지 내려간 상태다.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해 은행권의 예금금리는 빠르게 내려갔다. 이미 시중은행은 물론 저축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에서도 연 3%대 예금상품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 반면 지난해 7월까지만해도 3%대 중후반에 머물렀던 5대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정책서민금융 제외)는 오히려 급등해 현재 4%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기준금리와 가계대출 금리가 반대로 움직인 이유로는 정부의 대출규제 정책 혼선이 꼽힌다. 당초 금융당국은 지난해 전세대출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7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DSR을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전세대출 DSR 적용은 철회하고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은 9월로 연기했다.
정부 규제가 느슨해지고 부동산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자 가계대출 증가 폭도 다시 확대되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해 3월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00억원까지 축소됐으나, 4월 4조1000억원, 5월 5조6000억원, 6월 6조원으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가계대출이 다시 확대되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를 강하게 요청했고, 은행권은 대출금리 인상 및 대출심사 강화 등으로 이에 응답했다. 덕분에 지난해 8월 8조5000억원까지 불어났던 가계대출 증가폭은 올해 1월 3조3000억원까지 줄어들었지만, 대출 규제 영향으로 높아진 대출금리와 통화정책 전환으로 내려간 기준금리 간의 괴리는 상당히 커지게 됐다.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우대금리 추이.(단위: %) 자료=은행연합회
물론 예대금리차 확대를 두고 금융당국의 정책 혼선만 탓하할 수는 없다. 은행권 또한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축소하는 등의 ‘꼼수’로 줄어드는 이자마진을 방어하려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시중은행은 가산금리 인상으로 ‘이자장사’라는 비판 여론이 커지자 시중은행은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이자마진을 유지했다. 실제 5대 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가감조정금리(단순 평균)는 지난해 7월 2.53%에서 올해 2월 1.55%로 0.98%p 감소했다. 우리은행은 이 기간 우대금리를 2.42%에서 1.04%로 1.38%p 줄여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올해 2월 기준 우대금리가 가장 낮은 곳은 신한은행(0.94%)이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며 은행권을 향한 금융당국의 압박과 금융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시중은행도 대출금리 인하에 나서는 분위기다. 우리은행이 지난달 28일부터 5년 변동(주기형) 주택담보대출 가산금리를 0.25%p 인하했다. 우리은행은 같은 달 21일에도 주담대 금리우대 최대 한도를 1.0%에서 1.1%로 0.1%p 확대하는 한편, 3인 이상 다자녀 가구에 대한 0.2%p의 추가 금리우대를 적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우리은행이 시작한 금리인하 움직임은 다른 시중은행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가계대출 금리를 최대 0.2%p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국민은행도 은행채 5년물 금리를 지표로 삼는 가계대출 상품의 금리를 0.08%p 인하할 예정이다.
금융당국 또한 은행권을 향해 대출금리를 인하할 것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 20곳에 차주·상품별 가산금리 산정 근거 및 변동 내역, 우대금리 적용 현황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다만 대출금리 인하 압박으로 인해 진정된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5일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풀린 서울 일부 지역 부동산 회복세, 이사철 매매수요 등이 금리인하 기대감과 맞물려 가계대출 쏠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정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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