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한국철강협회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가 12일(현지시간)부터 본격 발효됐다. 이번 조치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주요 철강 수출국들은 무관세 혜택을 잃고 미국 시장에서 높은 관세 부담을 안게 됐다. 국내 철강업계는 수출 타격과 함께 중국산 저가 덤핑 공세라는 '이중고'에 직면하며 위기 극복을 위한 대응 전략 마련에 나섰다.
지난 1월 20일 재집권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를 공식화했다. 기존에 한국이 적용받던 ‘무관세 쿼터제’가 폐지됨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 수출 경쟁력을 상당 부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이번 관세 조치는 한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일본, EU 등 주요 철강 수출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확대 적용됐다.
또한, 이번 관세 부과는 철강·알루미늄 제품뿐만 아니라 볼트, 너트, 스프링 등 172개 철강 파생상품에도 즉각 적용됐다. 특히, 자동차·가전·항공기 부품 등 87개 품목 역시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져 국내 제조업 전반에 미칠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철강재 국내 수출량이 총 2835만411톤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과 북미 지역이 가장 많은 수출량을 기록했으며, 인도와 미국이 뒤를 이었다. 전통적으로 한국 철강재의 주요 수출 시장인 아시아 및 북미 지역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 철강 수입 시장에서 점유율 9.7%를 기록하며 네 번째로 많은 철강 제품을 공급해왔다. 그러나 이번 관세로 인해 국내 철강업계가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이 최대 1조 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더욱이 트럼프 정부의 대(對)중국 제재 강화로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 철강재가 한국 시장으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은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둔화로 인한 과잉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가 철강재를 대량 수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시장 내 중국산 철강 점유율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의 국내 유입량은 877만 톤으로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이번 조치가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일부 한국산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관, 자동차용 특수강판 등 미국 내에서 대체가 어려운 제품군의 경우 가격 인상과 수출량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25% 관세가 부과되면 사실 다른 모든 국가들과 동일 조건이 되는 것으로 (다른 국가와 비교 시) 가격이나 품질 적인 부분에서 비교우위가 있을 수 있다”며 “최근 알래스카 가스투자 건에 한국기업의 참여를 바란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을 비추어볼 때 이런 점이 수요 증대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철강 기업들은 국가별 관세 적용 변화에 맞춰 차별화된 수출 전략을 세우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13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정부에서 대미협상을 진행할 때 저희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할 예정”이라며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망간함유율을 높인 합금 특수강인 고망간강 등 저희만 만들 수 있는 제품이나 미국에서 생산이 어려운 제품 및 기술에 집중해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통상전략실을 중심으로 시장 변화에 따른 유연한 전략을 구상 중인 것을 알려졌다.
정부도 철강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일 무역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불공정 무역 행위를 감시하고 반덤핑 조사의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금융당국도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포함한 주요 철강 기업들의 재무 상황과 리스크 요인을 점검하며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최근 철강 생산 감축 계획을 발표하며 글로벌 공급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3월 중국 NDRC는 철강 생산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정확한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 컨센서스로는 5,000만 톤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2021년부터 에너지효율 벤치마크, 철강 생산능력 작업 중단 등을 공지해왔다. 2024년 중국 조강 생산량은 대략 10억 톤이었기 때문에 조강 생산량의 5%가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제 질서 변화에 따라 주요 금속의 ‘원료’를 확보하고, 경제적으로는 ‘비효율적’이지만 주요 시장에 생산 기지를 확보하는 업체들에 장기적으로 수혜가 전망된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리튬 자산 확보 및 인도 일관제철소 진출, 현대제철의 미국 제철소 건립 검토 등이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트럼프발 관세 조치는 단순한 미국 시장의 보호무역 정책을 넘어 전 세계 철강업계의 재편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국내 철강업계가 이를 위기로 볼 것인지, 새로운 기회로 활용할 것인지에 따라 향후 경쟁력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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