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두고 금융권의 관심도 표심의 향방에 쏠리고 있다. 여야가 이자부담 완화, 금융사고 제재 강화, 감독체계 개편 등 다양한 금융 공약을 제시한 가운데, 구체성이 부족한 선심성 ‘공수표’가 남발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각 정당이 공개한 총선 정책공약집을 살펴보면, 모두 다수의 금융 관련 공약이 포함돼있다. 눈에 띄는 것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모두 서민의 이자부담을 완화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약이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예금보호한도 5천만원→1억원 상향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도입 ▲중·저신용자 대출 및 저금리 확대 ▲정책서민금융 성실상환자에 대한 대출한도 증액 ▲불법 채권추심의 대부계약 무효화 등의 공약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은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불필요한 가산금리항목 제외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금리인하요구권 주기적 고지 의무화 ▲법정 최고금리 초과계약에 대해 이자계약 전면 무효화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금융권 출연요율 상향 ▲취약채무자에 대한 청산형 채무조정 적용 확대 ▲최저생계비 이하 금액에 대한 압류가 금지되는 생계비계좌 개설 허용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녹생정의당 또한 ▲새출발기금 및 채무조정 제도 개선 ▲폐업 및 파산·재생 지원 프로그램 도입 ▲파산회생제도 정비 ▲부채탕감 통합조정기구 설치 ▲학자금 부채 전액 탕감 ▲법정 최고이자율 인하 및 초과 이자약정에 대한 처벌 규정 신설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
여야가 공통적으로 발표한 금융 공약들은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이자부담이 커진 서민들의 표심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전국·1인 이상) 월평균 이자비용은 13만원으로 전년(9만8700원)보다 3만1300원(31.7%) 늘어났다. 이는 지난 2019년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으로, 이자비용이 가구가 지출한 월세 등 실제 주거비(11만1300원)을 넘어선 것은 9년 만이다.
반면, 정당별로 차별화된 금융 공약도 눈에 띈다. 국민의힘은 플랫폼과 경쟁 촉진을 통해 서민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서민종합금융플랫폼’을 구축해 금융소비자별로 꼭 맞는 상품을 안내하는 한편, 비대면 복합상담을 지원해 상담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5월 출시된 대환대출플랫폼의 서비스 범위를 확대해, 금융소비자가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 눈에 비교하고 낮은 금리로 갈아타기 쉽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의 금융 공약 중에서는 금융사고 관련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민주당은 최근 대규모 손실사태 등으로 논란이 된 주가연계증권(ELS) 등 고위험‧고난도 상품을 개인에게 판매하기 전 금융당국의 심사 후 승인을 받도록 하는 사전승인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연령‧투자성향‧경험 등에 따라 은행 내 개인별 고위험‧고난도상품 투자한도를 제한하는 규제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또한, 금융회사 재무제표에 중대한 오류 등이 발견되면 일정 기간에 해당하는 경영진 보수를 환수하는 보수환수제(clawback)를 도입하고, 여신전문회사‧신용협동조합 금융사고(횡령‧배임 등)에 대한 제재 근거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약도 제시했다.
녹색정의당은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녹색정의당은 정부 및 금융당국의 관치금융·낙하산 방지법을 마련하는 한편, 노동이사제·사외이사 추천제도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금융정책기능과 금융관리·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독립적인 ‘금융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녹색정의당은 또한 금융지주 경영진과 그룹 전체를 포괄하는 내부통제·책임 관련 규정 입법에 나서는 한편, 불완전 판매 등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겠다고 설명했다.
각 정당의 금융 공약에 대한 평가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편이다. 무엇보다 서민 이자부담 경감을 위한 각종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면서 자칫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이미 ‘2.1조원+α’의 상생금융안을 발표한 은행권 또한 이러한 금융 공약이 실제 이행될 경우 뒤따를 부담을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지난 3일 원내 정당들의 금융 공약에 대해 “코로나 이후 서민들의 가계부채를 탕감하고 투자자 보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공약들이 주류를 이뤘으나, 전반적으로 반시장적이거나 다소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국민의힘의 경우,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공약에 대해서는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하면서도 나머지 금융 공약에 대해서는 “대부분 현 정부정책을 그대로 베낀것에 불과해 개혁성 면에서 새로운 것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제도화, 재형저축 도입 등의 공약은 불필요하거나 비현실적인 반시장적 조치에 불과하다”라며 “불법사금융 방지 공약은 긴요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돼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맞춤형 금융교육 확대 공약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일부 공약은 다소 반시장적 조치를 포함하거나 도덕적 위험을 야기할 우려가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이어 “코로나 이후 여느 때보다 금융시장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자생적인 시장정책들이 긴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녹색정의당 공약에 대해서도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다소 도덕적 위험을 야기할 우려가 있어서 보다 구체적인 기준과 주의가 필요하다”라며 “채무자의 신용회복과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자생적인 지원 정책이 요구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금융감독체계 개편 공약은 개혁성이 높으며, 구체성이 부족하지만 산업은행의 녹색경제은행 전환 공약 역시 참신했다고 호평했다.
경실련은 “코로나 이후 급격한 금리인상과 채무부담을 덜기 위한 정책금융의 보조적 역할은 언제나 중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시장을 통한 가계부채 채무관리가 함께 종합적으로 수반되지 않은 공약은 언제나 도덕적 위험을 불러올 수 있어 상당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이어 “섣부른 개혁조치의 이면에는 부작용이 뒤따른다”라며 “이러한 제도나 조치를 고려하기 이전에 항상 금융감독당국의 집행력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닌지부터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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