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여소야대로 마무리되면서, 대표적인 ‘밸류업’ 수혜주로 꼽히는 금융주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증시부양 정책 추진력이 약화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어나는 가운데, 선거 영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은행지수는 4·10 총선 이틀 전인 지난 8일 786.36을 기록했으나, 이후 3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12일 746.13으로 장을 마감했다. KRX 보험지수와 KRX 증권지수 또한 같은 기간 1875.92에서 1728.97, 715.22에서 682.18로 하락했다. 증감율로 보면, 보험지수가 △7.8%로 가장 크게 하락했으며, 그 뒤는 은행 △5.1%, 증권 △4.6% 등의 순이었다.
대표적인 저(低)PBR(주가순자산비율) 업종인 금융주는 올해 초부터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며 상승세를 이어왔다. 실제 연초 640대를 오갔던 KRX 은행지수는 정부가 민생토론회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한 1월 17일 이후 반등하기 시작해 지난달 21일 866.67까지 올랐다. 은행주는 이후 배당락 영향 및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사태 등의 영향으로 다시 하락전환했으나, 여전히 700 후반대를 유지하다 총선 이후 큰 폭으로 하락했다.
금융주가 일제히 하락한 이유로는 여당의 참패가 꼽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는 지난 10일 실시된 총선에서 각각 90석, 18석으로 총 108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반면, 범야권은 ▲더불어민주당 161석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 총 189석을 확보했다.
그동안 정부는 공매도 전면 금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을 추진해왔으나,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국정 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받게 됐다. 특히, 최근 증시 활황을 이끌었던 밸류업 프로그램의 경우 상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추진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주 하락세의 이유로 ▲미국 금리인하 기대감 약화 ▲이란·이스라엘 충돌 위험과 함께 총선 영향을 꼽았다. 최 연구원은 “총선 결과에 따라 법 개정이 필요한 밸류업 프로그램의 기업 세제 혜택이 불투명해졌다는 판단에 저PBR 밸류업 관련주들의 주가 약세가 이어졌다”라며 “선거 결과에 따른 밸류업 모멘텀 약화 외에도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습에 따른 중동 확전으로 매크로 불안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주는 조정 국면이 좀 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정책 불확실성이 커졌음에도 중장기적으로 금융주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지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라며, 총선 이후 정책 불확실성 및 국내외 기준금리 인하 지연 등의 요인들로 은행주 주가가 단기적으로 조정될 경우에 매수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한국이 오랫동안 문제로 여겨졌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안 중 하나”라며 “일본 사례에서 보듯, 일본 정부의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 또한 장기적인 추진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 갔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국내 금융지주사별 주주환원율은 코로나19사태 때 주춤하다가 점차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일부 금융지주 및 은행의 경우 분기 배당 및 반기 배당 등 안정적인 배당수익을 위한 노력들을 해 왔다”라며 “향후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가 기대되는 만큼, 국내 은행주들의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야당 또한 증시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공약을 제시한 만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에 대한 여야 공감대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에는 정부 정책 지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승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한국 주식시장의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양당 간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고 말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 강화 및 공적기금 운용 시 주주환원정책에 대한 높은 가중치 부여, M&A·물적분할 시 소액주주 차별 시정 등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공약을 제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관련해서는 여당과 의견이 다르지만, 증시 부양에 대한 입장은 비슷한 셈이다.
김 연구원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여야 간에 공감대가 형성된 분야도 존재한다”라며 “향후에도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한 이벤트는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금투세를 회피하려는 개인투자자들의 연말 수급 이탈 우려가 있으나 “ISA 확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한국 주식시장의 긍정적 요인들을 감안하면 개인 수급이 지속적으로 이탈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과도한 우려”라고 덧붙였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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