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가 전세사기 피해 구제 대책 마련을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는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국토교통부에 요구한 것이었으나, 실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선(先)구제 후(後)회수’의 내용을 담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두고 국토부와 시민사회 대책위 간의 간극이 작지 않다. 대책위는 국토부가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조 원의 혈세가 투입될 뿐 아니라 그 상당액을 회수하지 못하고, 악성 임대인의 채무를 세금으로 대신 갚는 것은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우려된다”라는 주장이 왜곡되었다고 지적한다.
전세사기특별법은 전세 사기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잇따르자, 6개월마다 보완입법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제정된 특별법이다.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었으며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에게는 거주하는 주택에 대해 우선매수권이 생기고, 이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양도한 뒤 공공임대로 계속 거주할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면 최장 20년까지 주거 안정을 보장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토부는 지난 2월 「전세사기특별법」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요구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국토부는 입장문을 통해 국토교통부는 “선구제 후회수 조항이 시행될 경우 수조원 규모의 국민 혈세가 투입될 뿐 아니라 그 상당액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책위는 실태조사도 실시하지 않았으면서 ‘선구제후회수’에 대해 수조원의 혈세 낭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전세사기 시민사회대책위의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국토부에 수차례 피해 구제 대책 마련을 위한 토대가 되는 실태조사를 실시해 달라고 주장해왔으나, 실태조사에 대한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원회는 지난해 8∼9월 실시한 자체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피해자 수를 2만5천 명, 그중 보증금 일부조차 회수할 수 없는 후순위 임차인이면서 최우선 변제 대상이 아닌 이들을 50%로 가정하면 최대 4천875억 원이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수를 3만 명으로 늘려도 최대 5천850억 원이라는 것이 단체의 계산이다.
이는 국토부가 “개정안 통과 시 주택도시기금에서 ‘수조 원’이 피해자에게 지급될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한 금액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국토부는 내년까지 3만명가량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이들에게 최소 5000만원씩 선구제가 이뤄지면 최소 1조5000억원, 만약 피해자 평균 보증금인 1억4000만원을 전부 돌려준다면 4조2000억원가량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사기는 정부가 전세보증금으로 수백 채씩 집을 살 수 있는 민간임대주택 등록 사업자를 양산해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라며 “주택도시기금과 복권기금 등에서 정부가 충분히 재원을 자체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 교수는 “한국도시연구소의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추계한 결과, 최대 4,875억원의 재정이 소요되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서 피해자 등으로 결정한 피해자 15,433명에 올해 말까지 약 2.5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 결과”라며 “주택도시기금의 운용에서 차입금 상환 비율이 약 40~45%정도이며, 여유자금도 20조원이 넘는 상황이다. 2024년 예산의 여유자금운용 규모가 28.8조원에 달한다”며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는 주택도시기금의 재정 악화는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토부가 피해 가구와 보증금 피해 규모, 최우선 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가구 등 구체적 근거도 없이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왜곡·폄훼하고 있다”며 “피해 구제 대책에 토대가 될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에 선구제후회수 방안의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입장도 나온다. 사단법인 한국부동산경영학회 서진형 회장은 기고문에서 “법의 형평성, 재정투입규모의 불확실성, 법의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서 회장은 “전세사기 외의 보이스피싱, 다단계 등 피해를 당했을 때에도 특별법으로 보호해야 하는지 지역·대상 간 형평성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피해자의 전세보증금을 선구제한 후 구상권을 행사하려 해도 구상채권 자체가 부실채권이기에 회수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며 “정부의 무조건적 보상은 기금의 재정건전성 뿐 아니라 또 다른 전세사기의 유도, 도덕적 해이 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예상한다.
6개월마다 문제가 있으면 법을 개정하겠다고 한 것도 법의 안정성에 대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 회장은 “일반적으로 법은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을 이념으로 지향하는 사회 규범인데, 1년도 안된 법을 개정한다는 것은 법의 안정성을 훼손하는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라며 사회적 합의를 통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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