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언론이 해마다 퇴보하고 있다. 프랑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경없는 기자회(RSF)’에서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를 보면 올해(5월 3일 발표) 한국은 조사대상 180개국 중 62위에 자리했다. 2019년 41위에서 2020~2021년 42위, 2022년 43위, 2023년 47위, 2024년 62위로 4년 연속 순위가 추락했다. 계속된 하락도 문제지만 올해는 낙폭이 무려 15위나 급락했다는 점에서 한국언론의 문제가 고질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RSF는 지난해 한국 언론자유의 문제점으로 △언론계가 아닌 다른 산업 분야의 기업들이 점점 더 많은 언론 매체를 인수해 언론자유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점 △정치인과 정부 관료, 대기업의 압력으로 대언론 소송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올해는 문제가 더욱 악화된 것으로 지적됐다.
RSF는 한국언론의 문제점으로 △언론사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정부의 기소 위협을 받고 있고 △대통령과 정부 인사에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기자들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점 등을 짚었다. 이번 조사 기간 중 한국에서는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 개인정보 유출 의혹 수사로 MBC 기자가 압수수색을 당했고, 9월부터는 서울중앙지검에 대통령 명예훼손 특별수사팀이 꾸려져 뉴스타파, JTBC, 경향신문, 뉴스버스, 리포액트 등 언론사 사무실과 기자 자택을 압수 수색했다.
저널리즘은 민주적 시스템, 정치적 자유 행사와 필수적인 관계에 있다.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많은 동서고금의 격언을 접어두고라도 저널리즘의 후퇴는 민주주의와 사회적 지성의 쇠퇴, 산업과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저널리즘 자유의 퇴행에도 불구하고 정작 언론 내부에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지난 9일 있었던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70분이 넘는 일문일답 시간 동안 언론 상황에 대해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언론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안이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대언론 압수수색 외에도 KBS, MBC, YTN, EBS, TBS 등 공영방송에 큰 소용돌이가 있었고, 방송사와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의 갈등이 그치지 않았다.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회칼테러 협박’과 대통령 경호원들의 ‘입틀막’ 등 언로가 왜곡되는 행태가 계속됐다. 이런 현실에서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중견 기자들이 이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언론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언론경력 10년 이상의 관록을 자랑하는 각 언론사의 대표적인 언론인이다. 대통령실에 출입하려면 해당 언론사의 정책적인 배려와 대통령실의 까다로운 등록 및 신원조사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부동산·동산·채무 등 기자의 재산을 비롯해 친교 인물까지도 신고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까다로운 ‘성역’에 등록된 언론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과 사회적 책무를 인식해야 한다. 그런 언론인들이 급락하고 있는 언론 상황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실 기자들은 ‘권력에 놀아나는 자격 미달의 언론인’이라는 그 이상의 평가를 받기 어렵다.
대통령과 언론의 회견에서 언론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책무는 ‘질문의 역량’에 있다. 1년 9개월 만에 회견을 가질 정도로 언론을 피하는 대통령이라면 그런 책무는 더욱 막중하다. 이 말은 대통령의 생각과 국민의 반응을 바꾸도록 언론이 작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대신 정확하고 깨어있는 문제의식으로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에게 전할 수 있도록 질문하라는 것이다. 전달이 안 되는 부분은 무엇이 미흡한지를 다시 질문해서 대충 하고 마는 회견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질문의 역량’이고 기자의 책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채상병의 특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다면, 국민이 그 이유를 소상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았다면 그다음으로는 공수처의 조사가 언제 어느 수준까지 밝혀야 하는지, 그렇지 못하면 특검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 현재 공수가 가진 인력의 한계는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까지 소상하게 들어야 한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렇지 않고 초보적인 의문부터 기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회견을 끝내는 건 전적으로 언론의 문제다. 납득이 안 되는 상태로 회견을 끝내면 대통령도 엄청난 손해를 보기 마련이지만, 사회 전반에 불소통이라는 부작용이 넘치게 된다. 납득이 안 되더라도 소수의 질문자가 한마디씩 질문하고 회견을 끝내는 방식으로 합의했다면 이건 치졸한 담합이다. 모르면서 기사를 쓰겠다는 자세나 마찬가지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회견을 끝냈다는 건 여론의 실상을 반영하지 못한 상태로 끝냈다는 말인데, 이것은 우리 언론이 내용 없는 일방성의 미디어로 만족한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다. 대통령실 기자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회견을 끝내고 마는 비겁한 집단이라는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현재 한국의 시민사회는 대충하고 마는 일과 정성을 기울여 제대로 한 일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취약하지 않다. 대통령 회견 후 범야권 6개 정당의 주요 당직자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 총집결해 항의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의 언론은 이를 보도하거나,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기 이전에 자신들이 면피성 질문으로 끝낸 대통령 회견을 먼저 부끄러워해야 한다.
지금 한국언론은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분하지 못한다. 가짜뉴스라고 완전한 거짓만 있는 것은 드물다. 가짜뉴스 속에 진짜뉴스가 있지만 이를 가려낼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구분할 수 있도록 인력을 투입하거나 역량을 키우는 대신에 정치 양극화에 가담한다. 그래서 기사가 비방과 악의에 가담한다. 뉴미디어 쪽으로 가면 막말과 노골적인 폄훼가 더욱 심하다. 그런 것이 아니면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다.
이 사회의 언론인들은 날로 심해져 가는 미디어의 몰상식하고 예의를 저버린 막말 보도에 대해 공동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언론의 타락이 나와 내가 속한 언론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바로 심각한 언론의 문제다. 한국의 미디어가 이런 타락상에 빠진 것은 결코 개인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락하고 있는 한국의 언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정치권을 포함해 정부와 언론인이 언론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이를 우리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언론이 독창성을 지닌 고급 미디어가 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언론의 독창성은 산업의 독창성과 연결되며, 국가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09년 이준웅·최영재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신문이 독자적으로 확보한 정보에 의존하는 단독정보 비율은 11.5%에 그쳤다. 나머지는 공개된 정보(42.5%)나 재가공 정보(46%)에 조금 살을 붙이는 수준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영국의 ‘더 타임즈’는 94.4%가 단독정보이고, ‘뉴욕타임스’는 그 비율이 84.7%에 달했다. 단독정보란 기사 내용이 해당 신문에서 독자적으로 확보한 정보이거나 고유하게 기획해서 만들어 낸 독창적인 정보라는 뜻이다.
언론 정보의 이 엄청난 격차는 선진국과 비선진국의 사회적 콘텐츠 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정부는 언론을 기피하거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언론이 발전하지 못하면 국가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의 수준이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하며, 민주주의의 수준은 국력의 수준으로 이어진다.
임순만 작가 · 전 언론인(국민일보 전 편집인)
임순만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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