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달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배달노동자들은 이달 초 배달의민족이 근무조건 개정약관에 반발해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여기에 지난 11일 배달노동자가 음주차량에 치여 숨진 사고도 발생했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11일 50대 남성 A 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와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 등으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 씨는 이날 저녁 7시 50분쯤 금천구 독산동 도로에서 차를 몰다 중앙선을 침범해 차량 2대와 오토바이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쿠팡이츠 협력사인 이츠플러스 주문을 수행하던 50대 노동자가 숨졌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 노동조합에 따르면 4월에만 배달노동자 산재 사망 사고가 3건이나 발생했다. 배달플랫폼 노조는 공식성명을 통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과연 플랫폼 기업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묻는다. 안전에 대한 책임은 쿠팡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배달플랫폼 기업의 안전에 대한 법적 책임에 대한 강화와 정부의 대책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 배달의민족은 앱 공지를 통해 라이더와 맺은 약관을 변경했다. 이에 지난 5월 7일부터 라이더들은 개정된 약관 적용을 받게 됐다. 개정 약관에는 배달 노동자의 임금 구성과 지급방법, 업무수행 절차·방식, 계약 기간·해지 등 근로조건 전반에 관한 사항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의민족은 교섭을 통해 노사가 약관 변경 등을 논의할 여지는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라이더는 바뀐 약관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서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은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배달의 민족 본사 앞에서 사측의 배달료 정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지난 4월 30일 배달의민족은 배민커넥트앱을 통해 비마트 배달료를 현행 바로배달료 체계에서 구간배달료 체계를 오는 30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라이더들에게 공지했다.
지방 기준 바로 배달의 기본배달료는 3000원이지만 구간배달의 기본요금은 픽업요금 1000원, 전달요금 1000원 합해서 2000원이다. 사실상 기본배달료를 33.3% 삭감한 셈이다.
배달플랫폼 노조는 사측에서 시행하는 B마트 구간배달 도입은 명백한 배달료삭감이며, 플랫폼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불이익인 줄 알면서도 약관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조항으로 사업주의 불이익한 변경으로부터 보호를 받지만, 배달플랫폼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에 보호받지 못하고 회사는 언제든지 배달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약관 변경을 할 수 있다. 또 배달노동자는 약관 변경에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기에 불이익한 약관 변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홍창의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은 “134년 전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배달의 민족은 23년 7천억이라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얻고도 얼마나 더 라이더를 쥐어 짜내야 하나“며 비판했다. 이어 ”라이더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언제까지 알면서도 불이익한 약관 변경을 동의해야 하느냐“며 플랫폼 노동자로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노조는 이후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으며 배달의 민족이 운영하는 B마트 앞에서 조합원 행동, 불이익한 약관 변경 강제동의 절차에 대한 법제도 개선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플랫폼 기업이 일방적으로 배달료삭감을 시행할 수 있는 이유는 플랫폼노동자는 근로계약서 작성이 의무가 아니라 대부분 약관 동의 방식으로 회사와 위탁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일방적인 약관 변경은 그간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한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분야별로 불공정 약관을 들여다보며 시정조치를 하고 있지만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플랫폼 노동자들이 약관 변경 동의 절차 중 불이익한 근로조건 변경에 해당하는 것은 노동자 과반수나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변경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을 22대 국회에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도 지난 7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근무조건 마음대로 불이익변경 배민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라이더유니온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배달의민족이 오늘부터 모든 라이더에게 적용되는 개정약관을 시행하는 날”이라며 “약관이 근무조건 전반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어, 이를 사측이 마음대로 바꾸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일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개정된 내용은 이른바 ‘취소 수수료’와 관련된 내용이다. 개정 전에는 고객이 배달 도중 라이더와 무관한 이유로 배달을 취소할 때 플랫폼사가 라이더에게 사전에 합의된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하지만 약관이 상품을 픽업한 이후 플랫폼사가 라이더에게 별도 금원을 지급하도록 바뀌면서 취소 수수료 지급 시점이 제한되고 취소 수수료가 3000원에서 1500원으로 절반이나 삭감됐다는 게 지부 주장이다.
라이더유니온은 특히 변경되는 개정약관으로 인해 배달 노동자 임금의 최대 30% 이상이 삭감될 수 있다며, 정부가 배달의민족을 규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대표적으로 고객이 주문을 취소했을 경우 배달 노동자가 받는 운임료가 삭감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배달 노동자의 근무조건과 임금이 후퇴해 과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비판했다.
이어서 “현재의 약관은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과 매우 유사하다”며 “취업규칙의 경우는 변경 시 과반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있지만, 약관은 이와 같은 의무가 없다”고 지적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날 기자회견 이후 오는 24일 배달의민족 본사에 모여 단체행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우아한청년들 관계자는 16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우아한청년들은 약관 변경 등과 관련해 대표 교섭단체와 긴밀하게 협의·논의해 결정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동반성장 파트너인 라이더들의 더 나은 배달환경을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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