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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숙제를 편지로 반기는 공동체 교육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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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녀들은 홈스쿨링을 하며 일주일에 두 번만 ‘처치스쿨링’이라 불리는 공동체 교육 모임에 나간다. 거기서는 부모들이 교사가 되어 서로의 자녀를 함께 양육하고 가르친다. 그들에게는 그곳이 학교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나의 첫째 딸은 열일곱인데 그 모임을 졸업하고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고, 여섯째도 딸인데 그는 네 살이다. 어느 날 언니는 막내 동생이 그 교육 모임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막내에게 근황을 물었는데, 그 둘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첫째(17세): 요즘 학교 가는 것 좋아요?

 

여섯째(4세): 응, 좋아요.

 

첫째(17세): 왜? 뭐가 좋은데요?

 

여섯째(4세): 숙제가 있어서.

 

예상치 못한 대답에 첫째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첫째(17세): 왜 숙제가 있어서 좋아?

 

그랬더니 여섯째는 자기 언니가 숙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가 보다. 언니에게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여섯째(4세): 언니, 숙제는 딴 사람이 나한테 주고 내가 딴 사람한테 주는 거야. 편지 같은 거야. 선생님이 나한테 주면, 내가 해서 다시 선생님한테 줘.

 

언니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대화를 전해들은 필자 역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숙제는 편지와 같은 것!

 

숙제에 이토록 낭만적인 면이 있었다니…….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를 얼마나 즐기고 살아왔을까? 

 

먼저 교사가 학생에게 숙제라는 이름의 편지를 보낸다. 그가 진심으로 성장하길 바라고 응원하는 심정을 담아. 그러면 학생은 그 편지를 받아 답장을 쓴다. 선생님이 보여 준 정성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한 땀 한 땀……. 며칠 후 답신이 도착하고 교사는 기대되는 마음으로 편지를 열어 본다. 거기엔 제자의 노력이, 정성이, 그리고 가끔은 꾀도 담겨 있다. 숙제라는 편지로 제자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 교사는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때로 격려를 담아 때로 훈계를 담아 그 밑에 몇 자 더 적어 짧은 재답신을 보낸다. 얼마 후 다시 그걸 받아보는 학생의 마음에는 긴장과 설렘이 가득하다. 

 

‘이번엔 선생님이 뭐라 적으셨을까?’ 

 

이윽고 그것을 열어 교사의 단신을 읽는 순간, 아이마다 기쁨, 탄식, 보람, 실망 등 온갖 감정이 교차한다. 서신 교류는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그런데 나의 막내 자녀는 어떻게 숙제가 편지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이유만 언급하고자 한다. 

 

나의 교육 공동체에서는 학생마다 진도가 다 다르다. 학생의 나이나 학년에 따라 정해진 커리큘럼에 학생을 끼워 맞추지 않는다. 그 학생의 나이가 얼마건 간에 말 그대로 진도, 그러니까 현재까지 나아간 정도에 맞춰 바로 그 다음 과정을 배우도록 인도한다. 그렇기에 같은 반 안에서도 학생마다 진도가 각각 다르다. 

 

때문에 숙제가 나가는 방식도 여느 교실 풍경과는 차이가 있다. 각 학생은 자기 진도에 따라 각기 다른 숙제를 부여받는다. 자기의 현재 진도까지는 충분히 이해를 한 상황에서, 새롭게 배워야 하는 부분은 10~20%에 불과한 과제가 주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학생 입장에서는 숙제를 해 오는 일이 어렵지 않다. 숙제를 하면서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성장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숙제나 점수로 다른 학생과 경쟁할 일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각기 진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타인과 싸우느라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 없이, 자기와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다. 숙제를 받는 일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기다려질 수도 있다. 숙제가 편지로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이는 교육자 입장에서도 만족할 만한 상황이다. 교실 안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 진도에 맞춰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본다. 그 누구도 낙오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학생이 꾸준히 성장하는 일을 목격하니 교사로서도 보람을 느끼게 된다.

 

나의 공동체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개인 맞춤형 학습’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각광받는 교육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이송용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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