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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매수 일변도의 증권사 리서치 관행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좀처럼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증권사들은 ‘매도’ 의견보다는 ‘중립’ 의견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다.
2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10대 증권사가 발간한 리서치 보고서 중 투자의견 ‘매수’ 비중은 1분기 말 기준 평균 88.6%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89.2%)과 비교하면 소폭 감소했지만 사실상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투자의견 ‘매도’ 비중은 0.1%로 지난해와 같았다. 10대 증권사 중에서는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낸 곳은 하나증권뿐이었다. 하나증권은 지난해에도 2차전지 대장주로 꼽히는 에코프로에 대해 매도 의견을 제시해 시장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실제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2023년 대한민국 베스트 리포트’에서 대상(금융감독원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투자등급 비율을 공개한 48개 증권사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매도 리포트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국내에서 영업 중인 48개 증권사 중 올해 1분기 매도 리포트를 단 한 건도 내지 않은 곳은 28개로 절반이 넘었다. 매도 리포트를 낸 외국계 증권사 14곳을 제외하고 국내 증권사 34개로만 계산하면, 매도 리포트가 ‘0’건인 증권사 비율은 80%가 넘는다.
매도 리포트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중립’ 의견 비중은 소폭 증가했다. 10대 증권사의 중립 리포트 비중은 1분기 말 기준 평균 11.4%로 전년 말(10.4%) 대비 0.7%포인트 늘었다.
특히 삼성증권의 경우 중립 리포트 비중이 1분기 말 기준 전체 보고서의 22.4%를 차지해 지난해 말(20.1%)보다 2.3% 늘었다. 이는 10대 증권사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그 뒤는 NH투자증권(17.6%), 한국투자증권(15.3%), 메리츠증권(13.2%), KB증권(12.4%) 등의 순이었다.
삼성증권이 발간하는 리서치 보고서 중 매수 의견 비중은 77.6%로 10대 증권사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증권가에서 ‘중립’ 의견을 사실상 ‘매도’ 의견으로 본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증권은 매수 일색인 리서치 관행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비켜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외국계 증권사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노무라금융투자, 제이피모건, 크레디트스위스 등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증권사 중 투자등급 비율을 공개한 14곳의 매도 리포트 비중은 1분기 말 기준 평균 17.2%로 지난해 말(15.2%)보다 2.0%포인트 증가했다. 매도 리포트를 단 한 건도 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국내 증권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외국계 증권사의 매수 의견 비중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평균 54.7%로 지난해 말(58.6%) 대비 3.9%포인트 감소했다. 중립 의견은 같은 기간 26.2%에서 28.1%로 1.9%포인트 늘어났다.
국내 증권사의 매수 일색 리서치 관행은 이미 오래된 문제다. 증권사가 개인투자자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소신껏 매도 의견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배터리 아저씨’로 알려진 박순혁 작가를 지지하는 ‘박지모’(박순혁을 지키는 모임) 카페 회원들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에코프로 매도 리포트를 작성한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의 행로를 가로막고 거세게 항의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BNK투자증권도 2021년 카카오뱅크 청약 당시 목표주가로 공모가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가 투자자들의 비난 여론이 확산하자 결국 해당 보고서를 증권사 보고서 검색 사이트에서 내리기도 했다.
기업 고객의 이탈 가능성도 증권사 리서치 보고서가 매수 의견 일변도인 이유 중 하나다. 상장사는 증권사의 분석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식·채권 발행 및 인수·합병(M&A) 등의 업무를 의뢰하는 고객이기도 하다.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가 해당 기업이 정보 제공을 거부하거나 아예 거래를 끊어버린다면 증권사도 손해를 보게 된다.
이는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 비중이 국내 증권사보다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펼쳐 수익을 내는 국내 증권사와는 달리, 외국계 증권사는 영업 기반이 해외에 있는 데다 공매도 등 투자 수요도 다양해 국내 기업 눈치를 덜 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외국계 증권사의 경우 리포트를 유료로 제공해 직접 수익을 내는 만큼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의견 제시가 가능하다.
금융감독원도 증권사 리서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3월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해 7월 증권사 영업관행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서 “TF 논의 과정을 지켜본 바 그간의 관행에 대한 자성 없이 시장환경만 탓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질타하며 “리서치부서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애널리스트의 성과평가, 예산배분, 공시방식 개선 및 독립리서치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신껏 매도 의견을 내기 어려운 투자 여건을 바꾸지 않는다면 현재의 리서치 관행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금감원이 TF를 꾸린 지 1년이 지났지만, 증권사 매수 리포트 비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올해 금감원 업무계획에도 리서치 관행 개선을 위한 과제가 포함되지 않아 상황이 바뀌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금감원은 지난해 에코프로에 매도 의견을 제시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서면질의를 보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매수 일색의 리서치 관행을 지적하며 “시장 탓만 하지 말라”고 일갈한 것과는 정반대의 행태였기 때문. 투자자 민원이 제기돼 취한 조치였지만, 자칫 소신껏 투자의견을 제시한 증권사들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괜히 매도 의견을 냈다가 비난에 휩싸일 수도 있는 만큼,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의 요구와 시장의 눈초리 사이에서 ‘중립’ 의견을 제시하는 식으로 타협을 하고 있다.
이처럼 증권사들이 기업과 시장의 객관적 상황을 담기보다는 낙관적 기대를 반영하게 될 경우, 실적 추정치는 현실보다 과도하게 부풀려질 수 있다. 실제 지난 연말에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의견을 종합한 2024년 상장사 영업이익 전망치가 2023년 대비 50.6%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낙관론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50.6%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내고, 과거 증시 하락 의견을 냈다가 투자자로부터 항의받은 경험을 소개하며 매도 리포트를 쓰기 어려운 업계 관행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강 연구원은 “양질의 애널리스트 의견이 제시되기 위해서는 이를 수용하는 세상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라며 “주식시장에 대한 의견 교류 문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가야 할지는 참여자 모두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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