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주말 사이 대남 오물풍선을 또 살포하면서 곳곳에서 관련 신고가 잇따랐다.
3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1일부터 이틀간 대남 '오물 풍선' 720여 개를 남쪽으로 살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살포된 오물 풍선은 민간인의 주차장부터 공항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해를 입혔다.
지난 2일 오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북한 오물풍선으로 자동차 앞 유리창이 박살이 난 현장 사진이 올라왔다. 차 위에는 각종 오물이 담긴 봉지가 떨어져 있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22분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 북한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이 떨어졌다. 당시 승용차에는 아무도 탑승해있지 않아 다친 사람은 없었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을 통제하고 오물 풍선과 내용물을 군부대에 인계했다.
해당글을 본 누리꾼들은 ‘길가다 사람이 맞았으면 즉사’ ‘저런 식으로 집 앞까지 와서 떨어지는데 생화학테러를 해도 못 막는다는 거 아니야?’ ‘안 되겠다 확성기 틀자’ 등의 우려 섞인 의견들로 분분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1일 오후부터 2일 오전까지 오물 풍선이 떨어져 약 90분 동안 세 차례 항공기 운항에 차질을 빚었다.
공사는 오물 풍선을 제거한 뒤 항공기 운항을 재개했다. 오물 풍선으로 인해 운항이 지연된 항공편은 있지만 결항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1일 밤부터 살포한 오물 풍선이 2일 오후 1시까지 서울·경기·충청·경북 등 지역에서 720여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8∼29일 오물 풍선 260여개를 남쪽으로 날린 데 이어 전날 사흘 만에 살포를 재개한 것으로, 모두 합쳐 지금까지 1000개 가까이 식별됐다.
합동참모본부는 “오물 풍선을 발견하면 접촉하지 말고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밝혔다.
오물 풍선에 들어 있는 내용물은 거름, 종이조각, 담배꽁초 등 쓰레기로 1차 때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현재 부양 중인 풍선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도, 북한이 추가 오물 풍선을 내려 보낼 가능성에 대비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앞서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29일 오물 풍선이 국내 대북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 조치라며, 앞으로도 “'성의의 선물'을 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북한은 다시 2일 남측으로 쓰레기 등을 매단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지만 다시 북한으로 ‘삐라’(전단)를 보내온다면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우리는 한국 것들에게 널려진 휴지장들을 주워 담는 노릇이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충분한 체험을 시켰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김 부상은 오물 풍선 살포는 “철저한 대응조치”라며 “한국 것들이 반공화국 삐라 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 살포”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2일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 잇따르는 도발과 관련해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와 GPS 교란 행위는 정상국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저열한 도발”이라며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들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의 의미에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방송을 재개하게 되면 지난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도발에 대응해 일시 재개한 지 8년 만이자,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중단한지 6년 만이다.
북한 측이 풍선을 통해 날린 오물의 무게는 대략 5kg인데, 상공에서 떨어지다 보니 가속도가 붙어 충격은 수십 배까지 커질 수 있다. 봉투 안에 어떤 물질이 담겨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도 위험 요인 중 하나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3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북한이 남쪽으로 삐라를 보낸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오물을 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 행위 자체로만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북한 대남풍선에) 오염된 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에 주의는 해야 되고 함부로 촉수하지 않는 것은 강력히 권고한다. 다만 이로 인한 화학전 우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만약에 풍선에 그런 걸(발화물질이나 화학무기) 섞어가지고 집어넣는다면 그건 전쟁인데, 저런 식으로 접근하진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투발 수단을 놔두고 풍선을 통해서 한다면 성공 가능성도 지극히 낮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과 같은 해외 사례가 있을까.
근접한 예로, 지난 2018년 이스라엘 가자 지구의 '불풍선'이 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당해 6월 9일(현지시각) 인화성 물질을 단 풍선을 이스라엘로 날리려던 팔레스타인인 3명을 향해 항공기를 동원해 경고사격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측은 이전에는 공중에서 드론으로 불풍선과 인화성 물질이 담긴 연을 차단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보낸 연과 풍선 때문에 이스라엘 남부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자 공격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풍선과 연을 이용한 계속된 공중 방화 사건은 2019년에도 보고됐으며, 2020년 8월에 다시 시작된 풍선 방화 사건에 대응해 이스라엘 측은 가자 지구로의 연료 수송을 다시 중단했다. 이로 인해 유일한 가자 지구 발전소가 폐쇄됐다. 이후 2020년 2월, 연과 풍선에 대항하는 작전 실험으로 이스라엘 측은 새로운 레이저 무기 시스템인 라이트 블레이드를 가자 국경에 배치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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