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실질적 탄소세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는 등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배출권거래제 개편과 탄소 저감 생산 기술이 결합한다면 CBAM 무역 관세의 74%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13일 이 같은 내용의 ‘무상배출을 중단하라: 시장 활성화 시나리오 분석을 통한 배출권거래제 개선 방향 제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정부에서 할당해준 배출량을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더 많거나 적게 배출한 기업들이 시장을 통해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다. 정부가 기업이 탄소 배출 감축에 있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형 배출권거래제(K-ETS)가 산업의 탄소 배출 감축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배출권거래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과도한 배출허용량과 높은 무상할당 비중을 꼽았다.
실제로 배출권거래제 제3차 계획기간 시작인 2021년부터는 산업 전체적으로 잉여배출권이 발생했다. 이는 기업들이 감축 노력을 하지 않아도 배출권이 남을 만큼 배출허용량을 많이 할당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현재 탄소집약적이고 수출비중이 높은 산업에게 무상으로 배출권을 할당해 주고 있는데, 배출권 전량을 무상으로 받고 있는 철강 기업들은 이러한 공짜 배출권으로 돈까지 벌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제도 도입 이래 지금까지 배출권 판매로 약 1965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배출권 자체의 공급량이 많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 배출권의 가격은 유럽연합 배출권 가격의 10분의 1도 못 미치는 8000원대로 형성돼 있어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하기보단 배출권 구입에 투자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보고서는 짚었다. 이러한 문제들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2015년부터 2022년에 이르기까지 산업부문의 배출량은 거의 감소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EU의 CBAM이 본격 시행되면 이러한 문제들이 무역 관세를 통한 실제 사업 타격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CBAM은 철강 등 탄소 집약적인 제품을 유럽연합으로 수출할 때 생산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량에 상응하는 인증서 구매를 의무화한 일종의 관세 제도다. CBAM 대상 품목은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력, 수소 부문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CBAM 품목 EU 수출량 중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89.3%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철강업계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인해 2040년에는 EU에 탄소배출 대가로 연간 1910억 원을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대(對) EU 철강 수출량은 317만t, 철강 제품은 22만t이 수출되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의 전량 무상할당 및 고로-전로 공정 유지 시 한국 철강업계는 EU에 CBAM 철강 제품에 대한 인증서 비용으로 2040년엔 연간 약 1900억 원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수출품 중 하나인 자동차 제조의 핵심 자재 평판압연의 CBAM 인증서 비용은 2040년까지 제품 톤당 최대 86만7719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고서는 유상할당 비중을 높이면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유상할당으로 인한 수익을 기업의 저탄소 기술에 재투자해 CBAM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유상할당 수익 확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는데, 시나리오별 배출권 평균 가격은 2040년까지 약 8만1000원(현 정책 시나리오)에서 13만6000원 (탄소중립 시나리오) 사이에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시나리오 별로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2040년 연간 유상할당 수익은 ‘현 정책 시나리오’의 경우 약 32.4조 원,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경우 약 66.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33년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철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인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시나리오를 따를 땐 2040년 CBAM 철강 제품 인증서 가격은 약 500억 원으로, 무려 74%가 절감된다고 전망했다.
국내 철강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포스코는 현재 보유중인 파이넥스(FINEX) 기술의 성공적인 상용화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 철광석을 활용해 수소환원철을 생산하는 독자적인 기술인 하이렉스(HyREX)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성공적으로 하이렉스 기술을 개발한다면 저탄소 철강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나, 높은 기술투자 비용이 요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책적인 지원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수소환원제철에 대한 정부 지원액은 2685억 원으로 선진국 지원 규모에 비해 매우 낮다.
선진국들의 수소환원제철 지원 규모를 살펴보면 독일 약 10.2조원, 일본 약 4조 원, 미국 약 2조 원, 스웨덴 약 1.4조 원 순이다. 가장 격차가 큰 독일의 경우, 철강 생산량은 한국의 52%에 불과하지만 정부 지원금의 규모는 약 38배 이상이며 이를 통해 빠른 시일 내 고로기반 생산시설을 친환경 설비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철강 생산량은 비교대상국들 중 3번째로 높으나,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한 공공 지원금의 규모는 가장 낮은 상황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유상할당 수익을 탄소중립 재원에 활용하고, CBAM의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의 저자인 기후솔루션 김다슬 연구원은 “배출권거래제의 개편으로 국내에서 탄소 배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당장은 산업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면서도 “이는 EU CBAM 등 점차 확대되는 녹색 무역 관세로 타 국가에 지불해야 할 금액을 국가 재원으로 걷어 들이는 것과 같다. 이러한 재원을 온실가스 감축과 지역경제 전환 기금으로 활용하면 오히려 국가 경쟁력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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