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하면서 조기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물가 안정을 확신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통화정책을 완화 기조를 전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나온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09로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3.1%로 상승했다가, 4월 2.9%로 하락한 뒤 2개월 연속 2%대를 유지하고 있다. 3%대 상승률이 지속된 지난해 하반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안정화되는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물가상승이 둔화하고 있는 만큼 장기간 지속된 고금리가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달 23일 열린 제10차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한 위원이 “통화정책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물가 측면에서는 긴축 완화를 위한 필요조건이 점차 충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다만 한국은행은 금리인하를 개시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식에서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천천히 서두름(Festina Lente)’의 원칙을 되새겨볼 때”라며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물가상승률이 2%대로 유지되고 있음에도 한은이 물가 안정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잠재적 물가 상승 요인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경제성장률이 예상 외로 높게 나타나면서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3%로 시장 전망치를 크게 상회하며 2년 3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은은 “국내 성장세가 당초 예상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유가·환율 등 공급측 상방압력도 커지면서 2분기 이후 물가상승률은 지난 전망수준을 소폭 상회할 것”이라며 “물가상승률은 추세적으로 둔화될 것으로 보이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물가목표 수렴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향후 흐름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체감이 큰 식료품, 석유류 물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지난달 농산물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9%나 오르며 전체 지수를 0.69%포인트나 끌어올렸다. 배(126.3%), 사과(80.4%), 귤(67.4%) 등 신선과실(39.5%) 가격 급등세가 계속됐기 때문. 정부에서도 농산물 가격안정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좀처럼 물가가 잡히지 않는 모습이다.
석유류 물가상승률 또한 3.1%로 전월(1.3%) 대비 상승세가 확대됐다. 이는 지난해 1월(4.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부가 9차례나 유류세 인하조치를 연장하며 유가 안정에 애쓰고 있지만, 국제 유가가 오를 경우 정책만으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중동 분쟁으로 국제 유가가 아직 불안정한 만큼, 유가 상승이 하반기 물가 상승을 이끌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물가 흐름이 하락과 반등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긴축 완화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7월 6.3%에서 지난해 7월 2.4%까지 하락했다가 연말에 4%대에 근접하는 등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로 수렴해가고 있다는 근거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
게다가 우리나라의 최근 소비자물가 반등폭은 해외 주요국에 비해 큰 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최근 주요국 물가 상황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2.4%에서 올해 3월 3.1%로 0.7%포인트 상승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0.5%포인트 상승한 미국이나 동일 수준을 유지했던 유로지역보다 높은 편이다.
다만, 근원물가 상승률의 경우 우리나라가 해외 주요국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미국이나 유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이 부진하고 임금상승률도 낮은 데다 소비부진도 이어져 근원물가에 하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 반면,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고 임금 압력이 높은 미국·유로지역에서는 소비자물가보다 근원물가가 높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근원물가가 소비자물가보다 낮은 편이라고 해서 긴축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 지난달 금통위에서는 우리나라와 유럽 중 어느 쪽의 긴축 완화 리스크가 더 크냐는 질문이 제기되자 관련 부서에서 “우리나라가 서비스물가 압력 측면에서는 근원물가에 대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사실이지만 전체 성장세가 좀 더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긴축 완화 리스크가 반드시 작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또한 금리인하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연준은 지난 11~12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5.25∼5.50%로 동결하고, 올해 말 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5.1%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3월 회의(4.6%) 때보다 0.5%포인트 상향된 것으로, 현재 금리 수준(5.25~5.50%)을 고려하면 연내 금리 인하 횟수가 0.25%포인트씩 3회에서 1회로 줄어든 셈이다.
제롬 파월 의장 또한 FOMC 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연초 대비 둔화되고 있다면서도, 물가 안정을 확신하려면 추가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금리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한편,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소득의 감소, 높은 생활물가 등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라며 “섣부른 완화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어 “지금은 수면 아래 곳곳의 보이지 않는 암초를 피해 항로를 더욱 미세하게 조정해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 시기”라며 “겸손한 자세로 경제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다양한 시나리오별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정교하게 정책을 운용해 나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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