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온플법’이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다.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경영계의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거대 플랫폼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앞서 참여연대, 소상공인연합회 등 110여 개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유동수·강준현·민병덕·오기형·김남근·이강일 의원은 지난 5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온라인플랫폼법’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온플법은 거대 플랫폼의 불공정 거래행위 및 독점적 지위 남용행위를 금지하고 입점사업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내용을 담은 법률안이다. 이미 지난 21대 국회에서 20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결국 회기 네 처리되지 못한 채 모두 폐기됐다.
21대 국회가 풀지 못한 숙제인 ‘온플법’이 22대 국회에서 다시 등장한 것은 거대 온라인 플랫폼을 둘러싼 독과점 논쟁이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김남근 의원은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구축한 플랫폼 기업들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여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 ‘타 결제수단 홍보제한’ 등의 독과점 남용행위로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타 산업으로 급속히 독점력을 확대하고 있다”라며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 독과점 문제는 중소상인·소상공인과 같은 이용사업자뿐만 아니라 새로운 혁신기업의 시장진출을 가로막고 서비스 가격 인상 등을 통하여 소비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거대 플랫폼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입점업체 및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입법 논의가 추진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는 이미 지난 2020년부터 ‘온라인 플랫폼 공정성·투명성 규정’을 시행 중이다. 이 규정은 플랫폼이 일방적으로 입점업체와의 계약을 중단할 수 없도록 하고, 자사 상품에 대해 검색 순위 등과 관련해 유리한 혜택을 제공했는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다.
또한 플랫폼이 규정을 위반한 경우 입점업체뿐만 아니라 관련 단체 및 공공기관도 플랫폼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따. 플랫폼과의 법적 분쟁으로 인한 입점업체의 부담을 줄이고 플랫폼의 보복 위험도 예방하기 위해서다.
EU는 또한 지난해 5월부터 ‘디지털시장법’(DMA)도 시행 중이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매출액 75억 유로 이상 ▲자산가치 750억 유로 이상 ▲이용자 4500만명 이상인 플랫폼은 ‘게이트키퍼’로 지정되며, ▲상호운용성 확보 ▲데이터 이동권 보장 ▲시장지배력 남용행위 금지 등의 의무가 부과된다. 현재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6개 기업이 ‘게이트키퍼’로 지정된 상태다.
일본 또한 지난 2020년 ‘특정 디지털 플랫폼의 투명성 및 공정성 향상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은 매출액 및 이용자 수 등의 기준에 따라 규제 대상 플랫폼을 지정하고, 지정된 플랫폼에 대해서는 입점업체와의 상호 이익을 위한 조치 및 연간 보고서 등을 제출하도록 했다.
이처럼 해외 주요국은 규모에 따라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할 위험이 있는 거대 플랫폼을 구분하고, 해당 플랫폼에 특화된 규제를 운용하고 있다.
이번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온플법’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새로 추가된 내용도 있다. 실제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에는 플랫폼 입점업체의 권익보호 및 지위 향상을 위해 단체 구성권 부여하고, 해당 사업자단체에 거래조건 협의 요청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상 입점업체에 단체교섭권을 보장한 것이다.
22대 국회에 다시 등장한 온플법을 두고 플랫폼 기업들은 혁신이 저해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민형 벤처기업협회 팀장은 지난 4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최한 ‘신 보호주의 속 플랫폼법으로 사라지는 것들’ 세미나에서 “플랫폼 규제로 벤처기업의 혁신 시도가 위축되고 벤처기업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을 외면할 것”이라며 “플랫폼을 통해 적게 팔리는 하위 상품군의 판매량이 증가해 매출이 확대되는 ‘롱테일 효과’가 플랫폼 규제로 사라져 소상공인이 매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신순교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 국장 또한 “설익은 규제로 인해 토종 플랫폼이 고사하고 해외 공룡 플랫폼이 국내 시장을 지배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한다”며, “한번 생긴 규제는 되돌리기가 매우 어려우며, 규제가 당초 목적과는 달리 여러 역효과를 발생시켜도 복구할 길이 요원하다”고 말했다.
반면, 온플법을 발의한 민주당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거대 플랫폼의 독과점을 견제하기 위해 입법 추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5일 기자회견에 나선 박승미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정책위원장은 “그동안 가맹점주들을 비롯한 자영업자들은 과도한 수수료로 영업비용이 급격히 상승했음에도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며 완충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팔면 팔수록 역마진만 생기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라며 “오늘 발의된 법안에는 수수료율의 차별을 금지하고, 수수료율 산정 시 준수사항을 공정위가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어 안착된다면 수수료율이 합리화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명석 프랜차이즈산업협회 수석부회장 또한 “배달앱 3사가 이처럼 국민 생활과 서민 경제에 영향력이 큰 데도, 아직도 마음대로 수수료와 광고 정책을 변경하고, 입점업체에 물가 인상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라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이 입점업체 및 소비자들과 공정하게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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