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의 리일규 참사관이 지난해 11월 가족을 데리고 망명해 한국에 정착했다 한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은 한국 국민보다 더 통일을 갈망하고 열망한다"며 "이유는 못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 자식의 미래를 걱정할 때 뭔가 좀 나은 삶이 돼야 한다, 답은 통일밖에 없다, 이것은 누구나 공유하는 생각"이라 밝혔다.
북한 주민들이 통일을 갈망하고 있다니 진심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시각도 있음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소 시간이 지난 통계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정보 당국은 2009년 중국 접경지역의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북한을 드나드는 조선족을 동원해 북한 주민들을 직접 면담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매번 1000여명 정도의 주민을 대상으로 직접 면담했다. 질문은 "북한이 갑자기 붕괴됐을 때 당신은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라는 내용이었다. 가장 많은 응답은 "중국 쪽으로 갈 것이다"였다. 두 번째로 많은 답은 "어떻게 하든 자력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고 세 번째가 "한국에 가겠다"는 답이었다. (출처: 라종일 교수)
북한은 폐쇄된 사회이기에 북한 주민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남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2023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007년에 64%였지만, 2023년에는 44%로 줄었다. 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007년 15%에서 2023년 30%로 늘었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특히 젊은 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29세 연령대에서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2023년 기준 28%에 불과했다. 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이는 41%에 달했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십대로 내려가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날 것이라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그다지 통일을 바라지 않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나의 세대까지의 일로 남겨질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자녀들과 학생들에게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북한의 주민들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더불어 그들이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구분해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 원해서 선진국인 남한에 태어난 젊은이가 하나 없는 것처럼, 자의적으로 북한에서 태어나 자유를 박탈당하고 배를 곪는 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 정권에 대한 감정을 차치하더라도, 우리와 가장 가깝고도 먼 이웃인 북한 주민들에 대해 마땅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참고로 필자는 의정부에서 태어났는데, 가끔은 ‘만일 내가 수십 km만 좀 더 북쪽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 보곤 한다. 그랬다면 당장 나의 군생활은 10년으로 늘어났을 것이며(북한의 의무 복무 기간은 남자 10년, 여자 7년이다), 외국에 나가 보는 것은 언감생심에,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젊은 시절 나는 육체적으로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었는데, 만일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90년대 말 있었던 소위 ‘고난의 행군’ 기간에 이미 아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지만) 남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이런 나에게 어찌 ‘귀족의 의무’가 없다 할까? 교육자인 내가 다음 세대에게 북한 주민들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직무유기일 테다.
최근 어느 탈북민이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게 브로커를 통해 송금을 한 일이 불법송금으로 간주 되어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보았다. 황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어렵게 사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일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배경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어떠한 국가 안보적 이유가 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일 그저 평범하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송금한 경우라면 그것은 처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상으로만 보아도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국민이 국민에게 송금을 하고자 하였으나 합법적인 경로가 전혀 존재하지 않기에 하는 수 없이 우회로를 택하였다면, 그것은 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국민(가족) 사이에 송금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경로를 만들어 주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
쿠바의 경우, 미국에 있는 쿠바인들이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는 재정이 쿠바 GDP의 1/4을 차지한다. 물건으로 보내지는 것까지 합치면, 무려 1/3의 규모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상황은 쿠바와의 관계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지렛대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비슷한 면에서, 탈북민들의 대북 가족 송금은 국가가 고마워하면 고마워할 일이지 막을 일은 아닌 것이다.
역사를 보면 영원한 독재는 없었기 때문에, 북한의 독재 정권 역시 언젠가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그것은 갑작스런 사건일 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종말 이후에 북한의 정치 체계가 어떻게 돌아가게 될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대개 우리는 현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자연스레 (흡수) 통일이 올 것이란 생각을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또 다른 형태의 독재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고, 친중/친러 정권이 세워지거나, 심지어 북한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분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게 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북한 주민들의 의사가 매우 중요해질 수 있다. 그들이 원하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그들이 원하기 때문에 또 다른 정치 체계가 들어설 수도 있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그들이 무조건 우리를 선택하리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나이브하다.
이번에 망명한 리일규 참사관의 말에 힌트가 있다고 본다. 북한 주민들이 보기에 남한이 그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매력적인 선택지로 남아 있어야 한다.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러해야 한다. (언제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들이 우리의 체제를 선택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들의 마음이 우리에게 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족 간의 송금에 굳이 법리적 해석을 들이대 대한민국 정부를 속 좁아 보이게 만들 필요 없이, 통일 세대를 위한 작은 투자로 생각하고 모르는 척 해주는 지혜를 발휘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대북 풍선을 띄워 보내는 일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외부세계의 정보를 접할 권리를 갖고 있다면 북한의 주민 역시 그런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민들에게 어떠한 정보를 전달할 것인가에 있어서는 보다 정교함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그들이 듣고 싶은 정보를 보내 주었으면 한다. 북한 정권이 엉망이라는 것은 그들도 이미 안다. 남한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 역시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걸 우리 입으로 말해봤자 그들의 자존심만 상하고 우리만 천박해질 뿐이다.
그러니 그런 것보다는 요즘 국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남한의 쌀값은 얼마인지, 최신 과학계 소식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전하면서, 우리가 진심으로 북한 주민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전하는 메시지가 실렸으면 좋겠다.
또한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한 컨텐츠들도 실어 보냈으면 한다. 짧은 동화나 만화, 유머러스한 3행시나 넌센스 퀴즈 등, 그들이 잠시나마 웃거나 정서적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내용들로 우리가 그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훗날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무언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이송용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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