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하 가상자산법) 시행에 따라 거래소가 이용자에게 예치금에 대한 이용료를 지급하게 되면서, 이용료율 인상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거래소가 일제히 시장의 기대 이상으로 이용료율을 올리면서 제휴 은행의 부담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 19일 오후 10시경부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연달아 예치금 이용료율을 공개했다. 이전까지는 거래소가 고객 예치금에 대해 이용료를 지급하는 것이 유사 수신행위로 규정돼 불법이었으나, 이날부터 가상자산법이 시행되면서 가상자산 사업자도 고객 예치금에 대해 이자 성격의 이용료를 지급하게 됐다.
문제는 거래소가 고객 유치 수단으로 이용료율 인상 경쟁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국내 증권사의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인 연 1% 수준에서 이용료율이 결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업비트는 지난 19일 밤 10시 1.3%의 이용료율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비트 발표 후 약 1시간이 지난 19일 11시 20분경 빗썸이 2%의 이용료율을 공개하면서 거래소간 경쟁에 불이 붙었다. 업비트는 빗썸 공지 후 40분이 지난 20일 오전 0시 20분경 2.1%로 이용료율을 인상한다고 재공지했고, 이에 질세라 빗썸도 곧장 이용료율을 2.2%로 상향 조정했다. 1.5%의 이용료율을 공지했던 코빗이 20일 오전 1시경 무려 1.0%포인트 상향된 2.5%의 이용료율을 재공지하면서 한밤중에 벌어진 거래소 간 이용료 경쟁은 일단락됐다.
거래소 간 이용료율 인상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거래소와 제휴하는 은행의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는 고객 예치금을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체결한 은행에 보관하고, 은행은 이에 대해 이자를 지급한다. 해당 이자는 거래소가 고객에게 지급하는 이용료로 활용된다.
그동안 은행이 거래소에 지급한 예치금 이자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실제 케이뱅크의 경우 업비트에 약 0.1% 수준의 예치금 이자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가상자산법 시행에 따라 거래소가 이용료율을 대폭 인상하면서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도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예치금 이용료율 인상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이는 은행은 단연 케이뱅크다. 케이뱅크는 업비트와의 제휴를 통해 수신 규모를 대폭 늘리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케이뱅크가 보관 중인 업비트 예치금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6조3222억원으로 전체 수신 잔고(23조9748억원)의 26.4%를 차지한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업비트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만큼, 업비트를 통해 케이뱅크로 유입되는 자금 규모는 다른 거래소와 제휴하는 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케이뱅크의 지난해 가상자산 연계 수수료 부문 점유율은 76.87%로 2위 NH농협은행(빗썸·코인원) 18.51%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만약 케이뱅크가 예치금 이용료를 모두 부담한다고 하면 올해 1분기 기준 케이뱅크의 연간 이용료 부담은 13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케이뱅크의 1분기 순이익 507억원의 3배에 가까운 비용이다. 당장 연내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절차에 돌입한 케이뱅크로서는 실적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반면, 이번 이용료율 경쟁이 거래소와 제휴관계가 없는 시중은행에게는 기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업비트와의 제휴를 통해 고객과 자금을 확보하며 성장한 케이뱅크의 성공사례가 다른 은행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 거래소 간 이용료율 경쟁이 계속 격화되면, 거래소와의 제휴를 원하는 은행들이 이를 기회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규모가 큰 대형 시중은행의 경우 거래소에서 유입된 예치금을 대출이나 채권 등에 투입해 연 2%대의 이용료율보다 높은 수익을 노릴 여력이 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로 거래가 늘어나면 은행이 거래소에서 받는 입출금 수수료(건당 약 300원 수준) 수입도 늘어날 수 있다.
한편, 가상자산 정보 플랫폼 코인게코에 따르면, 이달 초 일평균 24조원대로 떨어졌던 비트코인 거래량은 60조원대를 돌파하는 등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은행권이 이번 이용료율 인상 경쟁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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